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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당신

점차 익어가는 순천 시골살이, 순천 사람이 되어 간다

by 해들임 2024. 1. 6.

햇살지기 토방에 앉아 겨울 햇볕을 즐긴다. 햇살이 떨어져 이마에서 따스하게 번진다. 구름이 희끗희끗 퍼져있을 뿐, 파란 하늘이 청명하다. 가끔 바람이 옆집 대나무 숲을 스치다가 우리 마당으로 들어와도 찬기가 전혀 없다. 울타리에선 금세 개나리가 터질 듯한 분위기이고, 흙빛 찬란한 산등성이에서는 내일이라도 진달래가 솟을 듯하다. 여기저기서 지저귀는 새들 소리에도 풀기가 묻어난다. 1월 첫 주가 지났을 뿐인데 시골집은 봄날이나 다름없다. 방문을 모두 열어젖히고 환기를 시킨다. 같은 순천이라도, 시내보다 시골 고향 마을은 훨씬 따뜻한 겨울이 이어진다. 오늘 같은 날이면, 세상사 근심도 무장 해제되고 만다. 시골 자연은 마력을 지녔다. 하느님의 은사처럼 중력을 내뿜어, 나는 속절없이 매몰되어 버린다. 발씨 익은 도시의 편리도 시골의 불편을 불평하지 못한다. 점점 도시의 편리를 잊어간다. 도시에서 날마다 조급하던 출판사의 꿈도 순천 시골이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온종일 집에서 머무른다.

시골집에서 91세 어머니와 살아가는 일이 익숙함을 넘어 자연스러워진다. 아침상을 차리고, 어머니와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부랴부랴 설거지를 끝낸 후 순천 사무실로 출근하는 생활이 때로는 행복하게 다가온다. 참 가엾게도 나는 단 한 번도 행복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내 안에서 구체화 된 적이 없었다. 슬퍼야 사는 사람, 매일 긴장하며 근심을 달고 살아야 사람 사는 거 같은 인생이었다. 그런데 요즘 어머니와 살면서 간을 보듯 행복을 맛보기도 한다.

작은 풍등처럼 떠오른 샛별이며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별들, 댓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새벽 고요로 잠자리의 여진을 털어내다가 커피를 마시며 무언가 끄적거리기도 하고, 때론 개펄 바닷가로 산책하고 돌아오다 보면, 어느새 어머니의 아침상을 준비할 때가 된다.

아침상이라고 해봐야 계란, 김, 생선 두 토막 그리고 지인이 보내준 사골국이 전부지만, 시간 맞춰서 어머니의 하루를 기력 있게 열어드린다는 사실이 가장 흡족하다. 당신 혼자 생활할 때야 입맛 없으면 아침을 거르거나 대충 때우는 일이 일상이었을 터, 입맛이 있든 없든 차려진 밥상 앞에서 아들과 대화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어머니가 예전보다 생기로워서 다행이다.

 

처음 어머니와 시골집에서 생활할 무렵에는 대화가 별로 없었다. 더구나 어머니는 하필 그때 극심한 좌골신경통을 앓았다. 밤마다 들려오는 어머니의 신음을 듣는 일은 고문이었다. 잠을 자다 벌떡 일어나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일이 매일 밤 이어졌다. 여기저기 병원을 모시고 다녀도 워낙 연세가 있으니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이대로 어머니는 밤마다 통증을 달고 지내야 하나 싶어 앞이 캄캄하였다. 시골 생활도 익숙지 못한 상태에서 어머니를 어찌 보살펴야 할지 막막하였다. 홀로 쓸쓸할 어머니 여생의 동반자가 되어 주려던 꿈이 처음부터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뼈 주사도 맞고, 약도 복용한 덕분인지 서너 달이 지나고부터는 어머니의 잠자리가 편안해지셨다.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통증에서 벗어난 요즘은 어머니가 먼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낸다. 무슨 이야기든 내가 먼저 꺼내야 입을 여시던 어머니가, 먼저 대화를 틀 때면 내 마음도 환해진다. 이제 어머니도 60대 아들과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엊그제는 저녁을 먹다가 어머니가 불쑥 미장원 이야기를 꺼냈다. 매주 금요일 한 번씩 방문하는 생활보호사가 시내 미장원으로 데려다주어 머리를 하신 후, 여기저기 들러 돌아오는 길이 힘들었단다. 아들에게 내뱉는 푸념처럼 듣다가 나는 아차 싶었다. “어? 어머니 머리 하셨어요?” 하고 먼저 물었어야 하는 것이다. 머리 미용을 하셨는데 아들이 몰라주니 에둘러 표현하신 듯싶었다. 하지만 끝내 “어머니, 예쁘게 잘하셨네요.”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여전히 살갑지 못한 탓이다.

시내 볼일이 있을 때면 내가 모시고 나가지만, 가끔 어머니는 생활보호사 차를 타고 나가셨다가, 볼 일을 마친 후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오신다. 내게 전화하면 점심도 함께하고 어디든 모시고 다닐 텐데, 행여 일하는 아들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걸어 다니는 걸 힘들어하면서도 고집스레 그리 다니신다. 시내 나오시면 저한테 전화해야지, 그리 혼자 다니면 안 된다는 당부를 투정 부리듯 드려도 소용이 없다.

 

어둠이 내려앉은 퇴근 시간, 버스에서 내려 마을 골목길로 들어서면, 아들을 기다리며 불을 환하게 켜두었을 시골집이 어른거린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방마다 환하게 켜진 창문들의 불빛은 내 가슴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어머니의 불빛이 참으로 따스하고 아늑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 불빛 안에 어머니가 안 계신다면 불빛의 중력은 사라질 것이다.

이 나이에도 퇴근하는 아들을 기다려 주는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이 벅차게 다가오지만, 문득 지금의 이 행복이 훗날 더 큰 슬픔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때는 퇴근하는 일도, 마을 골목길을 걸어오는 일도, 불 꺼진 집을 마주하는 일도 슬픔의 거대한 돔이 될 것이다. 소리 없는 탄성을 터트리게 하는 새벽의 별들도, 마냥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시골의 고요도, 온갖 세속의 상념을 씻어주는 개펄 바다 갯둑 길도 어머니의 존재로 내가 즐기는 것들이다.

 

어머니와 함께 맞을 첫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잘한 게 아무것도 없는 인생에서, 얼마가 될지 모를 어머니의 여생을 함께하는 요즘이 그나마 나의 존재감을 찾게 해준다. 좀 더 어머니께 올인하며 살고 싶지만, 삶의 무게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으니 스스로 안타깝고 한심할 뿐이다. 그럼에도, 나의 빈자리를 티 나지 않게 해주는 나의 서울 사람들이 고맙고, 이만큼이라도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오늘 마을 총회가 있다며 회관으로 내려간 어머니가 전화를 하신다. 당신은 여기서 점심을 먹었으니 기다리지 말라신다. 점심 한 끼 걸러도 전혀 시장기를 못 느끼는 시골이다. 그저 시원한 지하수 한 그릇 벌컥벌컥 마시면 그만이다.

텃밭으로 나가 얼마 전 강추위를 뒤집어쓴 배추 두 포기를 뽑았다. 마당 한쪽 텃밭에는 덩치 작은 김장 배추와 겨울 배추가 십여 포기 남아 있다. 시래기와 더불어 어머니와 나의 겨울 찬거리이다. 한 포기는 된장을 풀어 배춧국을 끓여야겠고, 한 포기는 오늘 저녁 아궁이 불에다 삼겹살을 구워 쌈으로 먹을 셈이다. 소주도 한 잔 곁들이고, 끝없이 이어질 어머니의 눈물 나는 젊은 날 이야기도 들어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