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전 국과수 부장 박기원 박사의 과학수사 저서 ’범인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에 실린 전문이다.
사건의 발생: 2006년 7월 23일,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의 한 외국인 집에 있는 냉동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언 채로 발견되어 신고한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집주인 J 씨는 휴가를 갔다 와서 배달된 생선을 넣기 위하여 냉동고를 열어보니 비닐봉투에 영아가 싸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이를 친구를 통해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자신의 집에 영아들을 갖다 놓은 것 같다고 하였다.
언론들은 “외국인 집에서 영아 시신 2구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앞을 다투어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나는 영아유기 사건은 종종 있는 사건이고 수많은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번 사건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이런 사건의 경우 부모로 추정되는 사람만 있다면 영아에서 검출된 유전자형과 비교하여 쉽게 부모를 확인할 수 있는 단순한 사건인 것이다. 처음에는 이 사건을 처리하는데 몇 개월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할 것 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다.
초기 상황
숨진 영아의 사망원인 등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에 영아의 시신 2구에 대한 부검이 의뢰되었다.
* 발견된 영아의 시신
초기의 중요한 이슈는 “영아가 출산을 하다 사망한 것인가 아니면 출산 후 살해된 것인가”였다. 이 경우 영아의 폐포에 공기가 차 있는지 여부로 판단한다. 부검 결과 두 영아의 폐포에 공기가 차 있었던 것으로 발표되었다. 즉, 두 영아는 출산 후에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그다음 의문은 “누가, 왜 두 명이나 되는 영아를 살해하여 집 안 냉장고에 보관했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아 2명의 부모가 누가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영아는 집 안에서 출산된 것일까 외부에서 출산된 것일까?”, “두 명의 영아는 같은 시기에 출산한 쌍둥이인가 아니면 다른 시기에 낳은 것인가?”, “왜 살해를 해서 집 안에 있는 냉동고에 보관하고 있었을까?”, “이를 집주인은 몰랐을까?”, “가정주부도 있었다는데 그러한 사실을 몰랐었을까?” 등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에 언론들은 추측성 기사를 쓰며 궁금증을 부추겼고 사건은 사회적인 큰 이슈가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이 도대체 그렇게 끔찍한 짓을 누가 왜 했는지 궁금해했다. 사실 우리도 그때만 해도 일부 사실을 제외하고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으며 수사가 진행되면서 하나하나 알 수 있었다.
영아의 아버지가 밝혀지다
나는 유전자분석에 필요한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부검실로 내려갔다. 처음에는 냉동된 상태였기 때문에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부검이 진행될 수 있었다. 영아들의 상태는 한 명은 부패가 많이 진행되었고 한 명은 거의 부패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둘은 동시에 낳은 것이 아니라 다른 시기에 낳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신이 보관된 상태에 따라 부패의 정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시기에 낳았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에 언론에서는 두 명이 같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쌍둥이가 아닌가 하는 보도도 있었다. 유전학적으로 이를 알 수 있냐는 질문도 받았다. 하지만 유전학적으로는 같은 부모에서 낳은 자식인지는 알 수 있어도 같은 시기에 낳았는지 다른 시기에 낳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처음 이 사건과 관련하여 우선 영아가 집에서 출산된 것인지, 아니면 밖에서 출산되어 집으로 옮겨진 것인지가 중요하였다. 왜냐하면 결과에 따라 수사의 방향이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사는 모든 가능성을 놓고 진행되었다. 따라서 초기에는 영아가 발견된 집에서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집에서 채취된 혈흔으로 추정되는 것들과 집안을 드나들었던 사람들을 파악하기 위하여 집 안에서 수거된 모발 등도 같이 의뢰되었다. 그리고 신고자인 집주인 J 씨의 구강상피세포도 채취되어 같이 의뢰되었다. 비록 J 씨가 신고를 하였지만 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행동에 이상한 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어느 정도 용의 선상에 올려놓았던 것 같다. 수사관의 직감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 같다. 물론 직감에 의한 수사가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건을 다루면서 체득한 경험은 누구도 무시를 못 하는 것이다.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이어서 증거물을 의뢰받자마자 신속하게 분석에 들어갔다. 분석 결과를 얻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집주인인 J 씨와 영아와의 사이에 부자 관계가 성립 되는가가 중요하였다. 냉동고에서 발견된 두 영아와 J 씨의 유전자분석 결과를 비교하여 친자 관계가 성립되는지를 분석한 결과 두 영아 모두 J 씨의 유전자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두 사망한 영아의 아버지는 신고를 한 집주인인 바로 J 씨였던 것이다. 신고자가 J 씨 본인이고, 집주인이었다는 점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하지만 우연히 부자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실험 과정도 다시 검토한 결과 모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그 외에 집에서 수거된 여러 가지 증거물들에서도 분석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특별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즉, 사건하고는 관련이 없는 결과들이었다.
두 영아의 모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 동일한 유전자형을 얻을 수 있었다. 즉, 두 영아는 같은 어머니가 낳은 자식들이라는 것이다(같은 어머니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모두 미토콘드리아 DNA형이 같다. 따라서 친형제들과 같은 모계의 자손들은 모두 같은 미토콘드리아 DNA 형을 갖는다). J 씨와 두 죽은 영아 사이에 부자 관계가 성립되며 두 영아의 어머니도 같은 사람이라는 분석 결과를 해당 경찰서로 통보하였다. 불과 3일 만에 모든 것이 확인되었고 사건이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대장정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연구원의 분석 결과가 나가자 언론에서도 일제히 “숨진 두 영아의 아버지는 J 씨 그러면 모(母)는 누구일까?”를 보도하였다. 관심의 초점이 과연 아이를 낳은 “여성은 누구일까”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지루한 공방전과 어려운 검증 작업이 시작되었다.
J 씨는 신고 후 급거 출국해 버렸다. 그리고 한국 언론에 자신이 두 영아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보도된 내용을 보고 바로 반응하였다. J 씨는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믿을 수 없으며 두 영아는 자신의 자식이 아님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하지만 나는 연구원의 감정에는 전혀 이상이 없고 부자 관계가 확실함을 재차 확인하였다.
경찰에서는 J 씨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조사와 가정부인 필리핀 여성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였다. 집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가정부밖에 없어 그녀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구강세포를 채취하여 의뢰하였다. 그리고 J 씨의 주변인 물에 대한 수사도 계속되어 그의 집을 드나들었던 사람들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도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J 씨의 여성 관계가 복잡했으며 백인 여성 등 또 다른 여성이 드나들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도하였다. 따라서 수사는 더욱더 확대되었다. 언론에서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수사 선상에 오른 백인 여성, 가정부 그리고 또 다른 여성 등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도하며 경찰 수사를 앞서갔다. 그리고 가정부에 대한 감정 결과에 촉각을 세웠다. 가정부에 대한 유전자분석도 신속하게 진행되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석 결과 두 영아와의 사이에 친자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가능성 있는 것으로 보았었는데 전혀 아닌 것으로 결과가 나옴에 따라 수사는 더욱 미궁으로 빠지는 듯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J 씨의 부인인 B 씨에 대해서 의심할 수 없었다. 주위 사람들에 대한 조사 결과 J 씨의 부인이 임신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모두 진술했으며 그에게는 이미 두 자식이 있었다. 그리고 가정부조차도 그녀가 임신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따라서 가정부를 의심하게 되었지만, 그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면서 수사가 어려움에 빠졌고 수사 대상을 더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연구원에서는 나름대로 어머니의 유전자형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였다. 발견 당시 태아를 쌌던 수건을 주목하였다. 수건은 두 개가 있었는데 각각 숨진 영아를 쌌던 것이라 했다. 수건에서 혈흔이 발견되고 그 혈흔에서 유전자형을 검출할 수 있다면 그 유전자형은 두 영아를 낳은 사람의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수건 중 하나는 검은색의 끈적끈적한 반고체 형태의 물질이 묻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깨끗한 상태였다. 두 영아가 시 차를 두고 출산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아의 상태로 보면 냉동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즉, 출산 후 살해되어 바로 냉동고에 옮겨져 계속 보관되었다면 그 정도로 부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건의 혈흔에서 유전자 분석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혈흔이 너무 부패하여 유전자형을 검출하는데 실패하였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생각했다. 다른 영아유기 사건들에서 영아 대신 탯줄이 의뢰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영아의 유전자형이 아닌 모의 유전자형만 검출된 적이 있어 혹시 이번 사건에서도 탯줄에서 모의 유전자형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했다. 따라서 담당 수사관에게 두 영아의 탯줄을 의뢰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바로 두 영아의 탯줄이 의뢰되었고 이들에서 유전자 분석을 실시하였는데 모두 먼저 분석한 영아 2명의 유전자형만 검출되었다. 두 영아의 모의 유전자형을 구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결정적 증거
이미 영아 2명과 J 씨와 부자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본인이 그 사실을 전면 부정하고 있던 상태였고 부인과 아들 둘이 프랑스로 가버려 부인인 B 씨와 영아와의 친자 관계를 밝힐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그들의 주거지에서 가족들이 사용하던 칫솔, 빗 등 생활용품들이 의뢰되었다. 가족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에서 유전자형이 검출되면 그것과 친자 관계를 검사하면 모가 누구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의뢰한 듯하였다. 하지만 가족이 사용하였다고 해도 확실하게 B 씨의 유전자형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만약 B 씨가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생활용품의 유전자형과 영아들 사이에 모자 관계가 성립되어도 그것이 반드시 B 씨의 유전자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칫솔을 다른 사람이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 증거물에서 B 씨를 모로 확정하지 못한다면 이 엽기적인 사건은 국제적으로 많은 의혹만 남긴 채 미제로 남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을까?
사실 프랑스 변호사가 주장했듯이 집안에서 수거한 물건에서 유전자형을 구해서 그것과의 동일성 여부로 B 씨가 모라는 것을 확정했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을 인정할 수는 있지만 이에는 일반 사람들도 쉽게 반박할 수 있는 허점이 있다. 즉, 집 안에 있었다고 모두 가족이 사용했다고 볼 수 없으며 그곳에서 여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됐다고 그것이 B 씨 유전자형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증거물로 칫솔 4점, 빗 2점, 귀이개 2점 등이 의뢰되었다. 이들에서 어떻게 채취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처음에는 많은 기대를 하기 힘들었다. 즉,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물건에서 유전자형이 검출되어도 모를 확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중에 프랑스에 있는 B 씨의 시료가 오면 그때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구강채취를 거부하면 매우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최대한 증거물을 자세하게 나누어 실험을 하기로 했다. 즉, 칫솔의 경우 가장 최근에 사용한 사람의 세포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손잡이, 오랫동안 사용한 사람의 구강상피세포가 침착되어 있을 칫솔모의 밑 부분, 최근에 실제 사용한 사람의 구강상피세포가 묻어 있을 칫솔모, 또 한 칫솔의 중앙 부분의 손을 받쳐주는 홈 부분은 실제로 오랫동안 사용한 사람의 손의 세포가 침착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어 그 부분 등 여러 개의 부위로 나누어 실험을 실시하였다. 빗은 여성용 빗 2점이었다. 빗에 붙어 있는 모발을 채취하였으며 주 사용자의 세포가 묻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손잡이, 빗의 모 그리고 침착된 부분인 밑 부분을 모두 채취하였다. 귀이개도 마찬가지로 죽은 세포의 덩어리인 귓밥 등이 귀이개의 끝에 묻어 있기 때문에 이를 닦아서 실험에 사용하였다. 이러한 분할 채취는 수많은 경험이 없었다면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아의 어머니가 밝혀지다
채취한 시료를 분석하여 많은 유전자 분석 데이터를 얻었다. 시료에서 얻은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1. 칫솔(A) 및 빗(B)에서 검출된 STR 유전자형은 J 씨의 유전자형과 일치함.
2. 빗(A) 및 귀이개에서 여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됨.
3. 칫솔(B)에서 STR 유전자형 및 Y-STR 유전자형이 검출됨.
4. 칫솔(B)에서 검출된 유전자형은 J 씨와 부자 관계가 인정되며 빗(A) 및 귀이개에서 검출된 유전자형과 모자 관계가 인정됨.
5. 영아1 및 영아2와 칫솔(B)에서 검출된 유전자형과 친형제 관계가 인정됨.
수백 개의 검출된 유전자형을 놓고 서로의 상관관계를 검토하였다. 처음 알고 있는 것들부터 확인해나갔다. 여성의 유전자형 이 두 종류가 검출이 되었는데 한 여성의 유전자형은 두 영아와 모자 관계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검출된 여성의 유전자형과 J 씨 와 영아와의 관계에서도 모두 가족 관계가 인정되었다. 빗(A) 및 귀이개에서 검출된 여성 유전자형의 주인공이 살해 유기된 두 아이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검출된 또 다른 한 명의 여성 유전자형은 두 영아와 가족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 따라서 제3의 여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된 것으로 보였다.
남성의 유전자형은 처음 J 씨의 유전자형과 일치하는 것만 검출되었다. 2차 세부 실험에서 칫솔(B)의 홈에서 J 씨와는 다른 남성의 유전자형을 검출할 수 있었다. 이 남성의 유전자형이 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 한 명의 남성 유전자형은 누구의 것일까?”
“그 칫솔을 사용한 사람은 누구일까?”
사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추적해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제3의 남성일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검출된 유전자형들과 일일 이 대조하였다. 같은 유전자형이 있는지 또는 가족 관계가 성립되는 유전자형은 있는지. 몇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데이터를 대조하여 분석하던 중 J 씨와 두 영아와 모자 관계가 성립되었던 여성의 유전자형(빗(A) 및 귀이개에서 검출된 여성 유전자형)과 새로 검출된 남성의 유전자형 사이에 모자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해석하면, 칫솔을 사용했던 남성이 J 씨와 B 씨 사이에 낳은 자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자식은 두 명의 생존한 자식 중 한 명의 유전자형이 검출된 것이다. 즉, 그 칫솔은 두 자식 중 한 명이 사용했던 것이다. 그 생존한 자식하고 두 영아하고 친형제 관계가 성립됨으로 결국 두 유기된 영아를 낳은 부모는 바로 J 씨와 B 씨라는 것이다. 새로 검출된 남성의 유전자형이 바로 생존해 있는 자식 중 한 명의 것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었다.
명확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지만, 혹시 다른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상황을 가정하고 검토하였다. 희박하지만 가능성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을 검토하였지만 다른 경우의 수는 없었다. 따라서 B 씨가 두 영아의 어머니임을 확신하고 최종 결과를 통보하기로 하였다. 이때 일부 언론에서는 두 영아의 어머니는 OOO라는 잘못된 추측성 기사를 내보냄으로써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사실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결과 통 보를 미룰 수가 없었다. 확신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결과를 통보하였다.
결과가 통보되자 언론에서는 “두 영아의 어머니는 B 씨”라는 제 목으로 뜻밖의 결과를 앞 다투어 보도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에 머물고 있던 J 씨는 아내가 임신한 적도 없으며, 집에서 쓰던 물건과 비교해서 얻은 결과는 믿을 수 없다고 변호사를 통하여 반박하였다. 오히려 실명을 사용한 사람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누가 자신을 음해하려고 자신 몰래 영아를 자기의 집에 갖다 놓은 것이라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국과수 감정 정말 맞나?” 하는 식으로 국과수의 감정에 의문을 내비쳤다. 나는 확신을 하고 있었던 터라 언론의 보도에 매우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언론에서는 “과학수사의 개가” 등의 제목으로 연구소 특집을 보도하기도 했다. 연 구소에 이 사실과 실험과정을 취재하기 위해 많은 기자들이 왔다. 감정을 하면서 일일이 응대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추가로 모를 확인하다
결과가 나간 후 얼마 안 있어 B 씨가 병원에서 자궁 적출 수술을 받으면서 조직 검사를 했는데 조직 검사를 했던 파라핀 블록(파라핀 블록: 세포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조직을 투명화한 뒤 조직 사이 빈 공간을 파라핀 용액으로 채운 중간 단계의 시료.) 이 남아 있다고 하여 그것을 의뢰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여기서 유전자형이 확인되면 더욱 확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파라핀 블록에서의 유전자형 검출은 매우 어렵다. 조직에 여러 가지 시약을 처리하고 조직 내부로 파라핀이 침투해 있기 때문에 이 파라핀과 시약들을 제거하고 실험을 진행해야 했다. 일부의 유전자형이라도 나오면 더욱더 확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인데 실험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약 일주일 이상 실패를 거듭하며 실험이 계속되었다. 결국, 이들에서 핵 DNA STR 유전자형(11개 좌위)을 검출할 수 있었다. 빗(A) 및 귀이개에서 검 출된 여성 유전자형과 정확하게 일치하였다. 이 정도만 해도 지구상에서 같은 유전자형을 갖는 다른 사람이 없을 정도의 확률이다. 그때서야 모든 감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힘들게 끌어온 한 달간의 모든 감정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영아의 시료가 프랑스로 가다
확정적인 감정 결과가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프랑스 쪽에서는 여전히 자국민 보호라는 미명 아래 J 씨와 B 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변호사를 통해서 계속 반론을 제기하며 결백을 주장하였다. 프랑스 측에서도 우리의 감정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관할은 우리나라인데 범죄인에 대한 조사까지 거부하고 연일 프랑스 언론은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면에는 한국에서 그런 분석을 할 수나 있느냐 하 는 식으로 우리나라의 분석능력을 문제 삼는 것 같았다. 우리의 감정 결과에 대해 전혀 믿으려 하지 않으니, 참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십 몇 년 감정을 해오면서 어려운 사건들을 모두 겪었던 나로서는 그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프랑스의 법 과학자들이 우리의 분석내용을 보았더라면 충분히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연일 이 사건과 관련되어 관련된 뉴스들이 보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범죄인을 국내로 송환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고, 직접 인도하러 간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리고 J 씨가 직접 국내로 들어와서 진상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의 감정 결과를 확신한다고 다시 확인하였다. 결국 타협점을 찾았는지 영아 2명의 시료와 감정서를 프랑스로 보내기로 하였다. 프랑스 대사관의 직원들이 직접 연구소에 왔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영아의 시료를 채취한 다음 두 개의 봉투에 시료를 넣고 이를 완전히 봉인하여 하나는 연구소에 하나는 프랑스에 보내졌다. 그리고 방배경찰서에서는 우리가 보낸 감정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들도 같이 프랑스로 보내졌다.
프랑스도 확인
시료를 보내고 난 뒤 열흘 정도가 지났다. 물론 우리는 완벽한 실험을 했기 때문에 시료를 보내 놓고도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드러난 것을 맞춰보면 되는 것이었다. 즉, 영아 2명에서 채취한 시료와 J 씨 그리고 B 씨의 시료를 검사하여 친자 관계가 성립되는지만 보면 되는 것이었다. 이는 매우 단순한 과정이다. 우리는 직접적인 비교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간접적으로 확증하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한 것이었다. 어려운 것으로 보면 약 100배 이상 힘든 작업을 우리가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과학수사의 능력과 현장을 볼 줄 아는 눈이 없었으면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들이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분명히 친자 관계를 보는 것인데 모가 없는 상태에서 모의 유전자형을 끌어낸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생존한 아들의 유전자형을 확인할 수 없었다면 “현장의 가족이 사용했던 생활용품과 비교한 것은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궁색하게 변명을 늘어놓았어야 했을 것이다.
시료가 프랑스로 보내진 지 한참 시간이 지났다. 프랑스 측에서 공식적인 감정 결과를 발표했다는 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돌았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한 감정이 옳았다고 발표를 한 것이다. 언론에서는 “프랑스도 인정”, “프랑스의 콧대를 꺾었다”, “과학수사의 개가” 등의 제목으로 일제히 보도하였다. 연구소는 다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과학수사적인 역량을 세계적으로 드높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등 칭찬 일색이었다. 실제로 주위에서도 많은 질문을 받고 격려도 받았다. 프랑스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취급되어 주요 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로 나갔다. 그때 우리에게는 매우 큰 사건이 있었다. 바로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핵실험 관련 보도보다도 먼 타국에서 일어난 이 엽기적인 영아살해 사건을 더욱 비중 있게 다루었다니 그들에게도 이 사건이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 짐작이 가는 것이었다. 프랑스 측에서도 그들의 오만을 질타하기 시작했고 그들도 자신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주한 프랑스 대사가 관계 기관을 방문하여 사과를 하기도 했다.
과학수사학적 의미
국과수가 생긴 이래 또는 과학수사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래 외국의 언론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를 한 사건은 이 사건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과학적 분석능력을 얕보았던 그들에게 일침을 가했던 것도 탄탄한 실력을 갖춘 연구원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역량도 이제는 많이 성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과학수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 사건 이전에도 과학적인 수사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이 사건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는 과학적 분석 방법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현장 실무자들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눈에 보이는 증거물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채취를 할 수 있는데 알지 못하면 이를 채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증거물들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감정 기법이 개발되고 새로운 기술들이 감정에 적용되어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실험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첨단 기술들도 현장에서 증거물이 채취되지 않거나 잘 못 채취되면 허사가 되고 만다. 이 사건은 사건 현장을 감식하는 사람들에게 현장과 증거물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좀 더 과학적인 눈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는 연구원들에게도 무엇을 어떻게 분석해야하는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우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적 사건을 완벽하게 마무리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우리의 과학수사 능력을 인정받음으로써 이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분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과학수사 능력은 이미 여러 사건을 통하여 국제적인 인정을 받아왔다. 괌 KAL기 추락사건 희생자 신원 확인 및 동남아시아 지진해일 희생자의 신원 확인 때도 우리나라의 분석능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세계적으로 보면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의 분석능력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사건은 그들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더 나아가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우리가 국제적 자신감을 얻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꾸준한 교육과 과학수사에 대한 투자,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과학수사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후기
피 말리는 1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맨 마지막으로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까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 사건의 담당 실장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적으로 실험을 주도했다. 실원인 이동섭 박사와 여러 직원이 거의 매일 밤늦게까지 실험을 하며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데 열과 성을 다하였다. 결론적으로 우리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나는 이 사건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어렵게 처리한 사건이었고,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고.”
서래마을 영아살해 유기사건 일지
2006. 7. 23. : J 씨 집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 발견, 경찰 신고
2006. 7. 24. : 영아들과 J 씨 시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의뢰
2006. 7. 26. : J 씨 프랑스로 출국
2006. 7. 28. : J 씨가 영아의 아버지임을 통보(국립과학수사연구소)
2006. 7. 31. : 가정부 L 씨 및 J 씨 집에서 확보한 생활용품 감정의뢰
2006. 8. 01. : 가정부 L 씨가 영아들의 산모가 아님을 통보
2006. 8. 07. : 영아들의 모는 J 씨의 아내 B씨임을 확인하여 통보
2006. 8. 17. : B 씨 자궁조직 분석 결과 숨진 두 영아의 어머니가 B씨인 것을 재차 확인하여 통보
2006. 10. 10.: 프랑스 당국 DNA 검사 결과 두 영아의 부모가 J 씨와 B 씨 부부인 것으로 최종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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