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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

여수 사람이라면 주목해볼 엄정숙 수필가, ‘여수, 외발 갈매기’

by 해들임 2024. 1. 9.

여수 토박이 엄정숙 수필집 [여수, 외발 갈매기] 중에서 ‘그 가을에 겪은 낭패’, 이 수필은 작가가 겪은 태풍과 건강 문제를 통해 인간의 삶과 운명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해설 아래 전문 참조)

주제와 메시지:

작가는 자연의 역동성과 우리의 삶 사이의 연결고리를 탐구합니다. 태풍은 자연의 무서운 힘을 상징하며, 이를 통해 우리 삶의 불확실성과 취약성을 강조합니다. 또한, 건강 문제를 통해 운명의 불가피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전합니다.

스타일과 언어:

작가의 글쓰기는 상상력과 비유를 풍부하게 활용하며, 자세한 서술과 감정의 표현을 통해 독자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특히 태풍의 기상현상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면서 독자를 깊은 감상으로 이끕니다.

문학적 장치:

이 수필은 비유와 은유, 상징적 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주제를 풍부하게 전달합니다. 태풍은 삶의 어려움과 도전을 나타내며, 건강검진과 골수검사는 운명과 불확실성을 상징적으로 다룹니다.

감정과 감정 전달:

작가는 독자에게 긴장, 두려움, 놀라움, 미소 등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이를 통해 독자와 공감을 형성합니다. 태풍과 건강검진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과 취약성을 솔직하게 다루어 독자의 공감과 공감을 유도합니다.

문학적 가치:

이 수필은 인간의 삶과 운명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으며, 자연과 인간, 운명과 선택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합니다. 또한, 글쓰기의 아름다움과 감정의 다양한 표현을 통해 문학적 가치를 높입니다.

 

이 수필은 자연과 인간, 운명과 선택에 대한 고요한 사유와 아름다운 언어로 독자를 매료시키며,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그 가을에 겪은 낭패’ 전문

 

일본말로 니하쿠도카(210일)라는 말이 있다. 입춘부터 이백십일이 될 때 무서운 태풍이 온다는 말이다. 입춘은 2월 4일이니까 7개월 후, 그러니까 9월 초가 되는데 8월부터 9월 전후해서 우리나라에도 태풍이 자주 다녀간다.

여름은 조용히 왔다 가는 계절이 아니다. 여름의 끝자락에 약속이나 한 듯 태풍이 오고야 만다. 가볍게 올 때도 있지만 대개는 한바탕 전쟁을 치르듯 바다와 육지를 할퀴고 간다. 특히 바다는 태풍의 첫 번째 제물이다. 나는 바다가 아기 턱받이처럼 둘러 있는 아파트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태풍의 조짐이 보이면 5월 보리밭처럼 출렁거리던 바다가 3D 입체영화 화면으로 바뀐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야릇한 흥분과 전율을 맛보곤 한다. 태풍이 절정에 이르면 섬들은 물론 바다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하늘과 땅의 경계도 가늠할 수가 없다. 우리 식구들은 태풍의 터널을 통과할 때까지 한마음으로 숨을 죽이며 기다린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가족합창단이 오스트리아를 탈출하는 장면처럼 긴장과 두려움의 순간이다. 바람소리가 잦아들면 태풍이 지나간 게 아니고, 우리가 태풍 속을 빠져나온 듯 안도의 한숨을 쉰다. 사람의 일생 가운데도 태풍이 더러 있지만 해마다 오지 않는 것은 참 고마운 천칙이다.

어느 가을 초입에 태풍 한 개가 한반도를 급습했다. 아니, 바닷가에 있는 우리 아파트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베란다 유리창이 깨지고 방 하나는 물바다가 되었다. 금방이라도 집안이 바람 풍선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갈 것 같았다. 내게는 설상가상의 형국이었다. 태풍이 오기 얼마 전에 발목을 다쳐 깁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복사뼈에 금이 간 것부터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작은 변수가 큰 변수로 확대되는 나비효과가 이런 것일까? 내 운명은 잠자던 나비의 날갯짓부터 세팅이 된 것이 분명했다. ‘재앙은 싱글로 오지 않는다’라는 화불단행(禍不單行)의 단초 같게도 생각되었다. 하지만 비좁은 내 신변에 불행의 파장이 또 번질 곳이나 있을까 싶었다.

건강검진을 받은 병원에서 전문의를 찾아가라는 소견을 받았다. 깨진 유리 파편들은 지인들이 와서 치워 주었지만, 난장판이 된 방은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태풍 뒤에 펼쳐진 맑은 하늘은 가을을 앞당기듯 청명했다.

나는 의사를 만나는 걱정보다 집수리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에 마음이 급급했다. 인근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의 의사는 건강검진 결과표를 꼼꼼히 살피더니 골수검사를 제안했다. 한쪽 골반을 헤집더니 골수가 없다는 것이다.

멀쩡한 나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웠지만, 의사의 지시대로 다른 쪽 골반을 내밀었다. 나보다 더 고생스러워 보이는 의사는, 유전자 검사를 할 골수조차 찾지 못했다며 큰 병원으로 빨리 가보라고 했다. 안쓰럽고 미안한 얼굴이 마치 자기 탓인 듯 굳어 있었다. 형제들이 있는 곳이면 더 좋겠다는 고견도 내놓았다. 골수가 무슨 일을 하는 물질인지 묻지 않는 내게 골수와 혈소판과 혈액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조금만 부딪쳐도 멍이 잘 드는 나는 의사의 말이 다 틀리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내게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남한테 있는 것이 부러운 적은 없었지만, 골수까지 없다고 하니 새삼 ‘없는 것’에 대한 느낌이 블랙홀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그날 병원에서는 그리 큰 사건이 없었는지 간호사들이 나를 조심스럽게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피에로가 된 듯 표정 관리를 하느라 여간 고생을 한 게 아니었다. 남편은 뭘 좀 아는지 안색이 창백했다. 그리고 결심을 굳힌 듯 아파트를 새로 고쳐서 새집으로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나는 서울로 가야 하고 살림은 이삿짐센터로 보내야 하지만, 젖은 방과 깨진 유리창을 따로 궁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반갑기만 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위아래 층에서 내부 수리하는 것을 보았지만,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하는 소원을 빌어 본 적은 없었다.

트라이앵글 콘셉트의 맞춤형 재앙 속에 이런 호재가 숨어 있었다니, 아파트의 황홀한 변신을 상상하니 목발도 내 발처럼 가벼웠다. 먹구름 뒤에 반짝이는 은빛에 나는 설레기 시작했다. 가을이 사박사박, 모래밭을 걸어오는 것처럼 더디게만 느껴졌다. 계절 감각도 잃은 채 남편은 집수리를 시작하고, 나는 모 대학병원에서 다시 골수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내게 ‘재생불량성빈혈’이라는 병명을 주홍글씨 대신 달아 주었다. 골수가 하나도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마음이 더 착잡했다.

아파트 내부 공사는 한 달 가까이 걸렸다. 너무 낯설어서 초현실적인 공간 같았다. 어쩌면 내가 초현실 오브제로 엉뚱한 조형물이 아닌가 싶었다. 치질이나 변비 정도가 아닌데도 그런 객쩍은 생각을 하면 조금 재밌기도 하고 비통하기도 했다. 건강한 사람이 맛볼 수 없는 색다른

감흥이었다.

태풍이 오거나 가을이 되면 반드시 그때의 일이 생각난다. 탄력 있는 속도감과 트라이앵글 구조의 사건 전말 때문이리라. 심지어 수필 한 편을 쓰려고 해도 그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