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대한민국 문단에 새로운 역사가 쓰였다. 한강 작가가 대한민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이다. 노벨상은 정치적 업적을 인정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수여되었지만, 문학 부문에서 받은 이번 상은 대한민국 문학계에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하지만, 출판사를 운영하는 내 시선으로 이번 한강 작가의 수상은 조금은 복잡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국가 중 독서율이 하위권에 머물러 있으며, 교과서와 같은 의무적 독서 외에는 독서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 출판계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대형 서점들이 점차 문을 닫고, 출판사와 작가들은 생존의 갈림길로 들어선 지 오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책 제작에 필요한 비용 가운데 종이값만 해도 50% 이상 치솟았고, 이는 종이책 출판을 더욱 위축시키는 상황을 불러왔다. 종이 소비량이 줄어들자 종이 회사들은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종이값을 인상했고, 그 결과 책을 출판하는 비용은 부담스럽게 증가했다. 종이책을 읽는 독자층은 줄어들고, 디지털 콘텐츠가 급부상하는 시대에서 종이책을 제작하고 출판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또한 한국의 번역 문학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문학 작품이 많아졌지만, 번역된 작품의 수는 여전히 적으며, 해외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에서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실로 볼 수밖에 없다. 국가가 문학과 독서 문화를 체계적으로 지원한 것도 아니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독서에 매진하여 문학 창작 환경을 활성화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작가들이 창작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 성과라 더욱 값진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독자들은 그의 책을 구입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평소 출간되었던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서점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출판사와 인쇄소는 며칠 밤을 새워 책을 인쇄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출판업계 종사자로서 나는 이러한 변화가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느낀다. 과연 노벨문학상 수상이 일시적인 문학 붐을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이 기회가 대한민국 출판업계와 작가들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까? 트럭들이 인쇄소 앞에 줄지어 서서 한강 작가의 책을 실어 나르는 광경을 상상하며, 이 사건이 단지 한 작가의 영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학과 출판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작가들이 마음껏 글을 쓰고, 독자들이 책을 읽는 문화가 정착되는 나라. 출판사나 서점들이 허덕이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환경. 나는 한강 작가의 수상을 계기로 대한민국 출판업계와 문학계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또한 몇몇 대형 출판사가 대한민국 출판계를 좌지우지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중소형 출판사도 가까스로 버텨가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싶다.
물론 이번 수상이 곧바로 변화를 불러오지는 않겠지만, 독자들의 관심이 출판계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작가와 독자가 서로에게 활력을 주며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야말로 이번 한강 작가의 수상이 대한민국 문학계에 남길 가장 큰 유산일 것이다.
*사진 출처: 나무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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