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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 사노라면 92세 어머니가 오랜 세월 불경의 사경을 하는 슬픈 이유

by 해들임 2024. 10. 28.

MBN 휴먼다큐 사노라면 658회

어머니의 일상 가운데 불경을 노트에 옮겨 적는 사경(寫經)을 하는 모습은 가장 친숙한 모습 가운데 하나이다. 이 모습이 MBN 휴먼다큐 사노라면 658회에서 그려졌다.

시골에서 어머니와 생활하다 어머니가 조용하다 싶을 때 살펴보면, 어김없이 사경을 하고 있다. 특히 형과 누이가 세상을 떠난 이후 어머니는 사경하는데 매달렸다. 모르긴 해도 비통한 가슴을 사경으로 풀어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사실 휴먼다큐 사노라면 658회에서 비친 한 보따리의 사경 노트 이외도, 수십 권 되는 사경 노트가 더 있었다. 이 노트들은 1998년 8월 완공된 제주도 평화통일불사리탑사에 봉헌하였다. 형과 누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일이다.

어느 해 겨울, 시골집 마루에서
어머니가 사경하는 시골집 작은방
어머니는 이 방에서 늘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하신다

92세 어머니가 펜을 들고 집중해서 사경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홀로 지내실 때에도 마을 노인들이 모이는 마을 회관 출입을 거의 안 하는 편이다. 하루 대부분 시간을 시골집에서 홀로 보내신다. 집에서 텃밭을 일구거나 사경을 하거나 하는 일이 어머니의 일상이다. 휴먼다큐 사노라면 658회에서도 어머니의 속마음이 종종 비쳤지만, 두 자식을 앞세운 어미가 무슨 낯으로 사람들 앞에서 웃고 떠들 수 있냐는 것이다. 어머니가 쓴 기도문에서도 부처님께 용서를 구하는 문구가 보이곤 한다. 자식을 지켜주지 못하고 앞세웠으니 당신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요즘에는 육필이 점차 사라져가는 시대여서 어머니의 육필 노트들은 그만큼 소중하게 다가온다. 해드림출판사를 운영하는 나조차도 육필보다는 컴퓨터 자판기를 더 두드린다. 하지만 나는 육필의 가치를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손글씨, 즉 육필로 글을 쓰는 행위는 우리 두뇌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과정은 단순히 펜을 잡고 글자를 그리는 것을 넘어 신경과학적 자극을 통해 두뇌의 여러 영역을 활발하게 활성화한다. 이를 통해 학습 능력, 기억력, 창의성, 그리고 정서적 안정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어머니가 사경을 하는 모습이 내게 든든하게 다가온 이유는 무엇보다 손글씨가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손글씨는 뇌의 다양한 영역을 활성화하기 때문에 두뇌의 인지 능력을 강화하고 기억력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글을 쓸 때 뇌는 글자의 모양을 인식하고, 손의 움직임을 조절하며, 의미를 상기하고 표현하는 복합적인 작업을 수행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뇌의 신경 회로가 자극되어 활성화되면서 인지 기능이 강화되고, 치매와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손글씨는 꾸준한 반복과 집중이 요구되므로, 뇌를 자극하고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에 따르면 손글씨를 쓰는 활동은 두뇌의 신경 가소성을 높여, 뇌의 회복력과 적응력을 강화해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손글씨를 쓰는 동안 깊은 집중 상태를 유지하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감소되고, 정신적 안정감이 증가하여 치매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성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손글씨를 꾸준히 연습하고 일상생활에 통합하는 것은 뇌를 자극하고 치매 예방을 위한 긍정적인 생활 습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빗소리를 들으며, 유리창에 비친 어머니 사경 모습

 

어머니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고흥군 나로도 봉래초등학교를 졸업하셨는데, 어머니는 내 친구의 초등학교 대 선배이기도 하다. 물론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 어른들 가운데는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나 고위 공직자를 지낸 분들이 수두룩하다. 또한 여러 권의 저서들도 갖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분들의 어떤 저서보다, 오랜 세월 써 온 내 어머니의 사경 노트가 더 존귀하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어머니여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사경 노트는 경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경을 오래 하셔서 그런지 92세 어머니의 총기를 나는 따라가지 못한다. 어머니는 무엇이든 기록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는 분이다. 심지어 지금도 가계부를 쓰는 당신이다. 어머니를 보면 나는 숙연해진다. 아무리 큰 슬픔을 안고 있어도 강단을 잃지 않으셨다. 60대 중반의 아들을 무안할 만큼 나무라도 내가 어머니께 몸을 낮추는 까닭이다.

 

MBN 휴먼다큐 사노라면 658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