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누구나 치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치매 연령도 차츰 낮아져 은근히 불안을 느끼는 현대인들이다. 일상에서 기억력이 흐릿해지거나 사람 이름조차 얼른 떠오르지 않을 때 우리는 치매를 떠올린다.
현재 미술, 음악, 운동(댄스), 공예 등 다양한 치매예방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분야를 놓치거나 소홀하게 다루고 있다. 그것은 기억 공장의 풀가동이라 할 수 있는데, 기억력 회복과 증진을 위한 ‘추억 드러내기’이다. 까맣게 묻혀버린 기억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다 보면, 그것만큼 기억력 회복과 증진 그리고 뇌 활동에 좋은 것도 드물다.
자서전 쓰기를 통한 기억력 훈련
5·18민주화운동 관련하여 재판을 받아야 하는 전두환 씨가 치매로 방금 전 일도 기억 못해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기사를 읽고 상당한 의구심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즈음 출간된 방대한 ‘전두환 회고록’ 때문이다.
전두환 회고록은 전체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두환 회고록(1)이 604쪽, 전두환 회고록(2)가 658쪽, 전두환 회고록(3) 646쪽 그래서 전체 페이지만 해도 1,908쪽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이다.
이 회고록을 아무리 비서관이 주도적으로 썼다 해도, 본인의 기억력 도움 없이 이 분량을 혼자 힘으로 엮기는 어렵다. 지난 기록이나 메모를 참고 하였다 하더라도, 이 회고록을 엮어낼 정도의 기억력이면, 완전히 잃어버렸던 기억도 되살아났을 것이다. 지난 권좌의 일을 회고하며 때로는 행복하여 미소도 짓고, 때로는 쓴웃음도 지으며 회고록을 쓰는 동안 충분히 지난 일을 즐겼을 법하다.
전직 대통령들이나, 김종필 전 총리를 비롯하여 기업가나 일반인 등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쓴 이들은 이런 기억력 운동 때문인지 치매를 앓았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거 같다.
따라서 출간 목적이 아니라 기억력 회복을 위해 추억을 소재로 자서전을 써보면 까맣게 잊혔던 기억조차 불쑥불쑥 떠오르게 된다. 지난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은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장 쓰기도 어려울 수 있지만, 차츰 쓰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문 기억들이 살아나 써야 할 것들로 밤을 샌다. 세상을 살면서 받았던 깊은 상처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찌꺼기라도 남아 있기 마련이다. 자서전을 쓰는 일은 지난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기도 하다. 화를 안으로 삭이며 살아온 사람들일수록 치매 예방을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추억의 음식을 통한 기억력 회복
예전에는 한 가정에 치매 환자가 생기면 가족 구성원 모두 생활이 흐트러지거나 심지어 그 가정이 파괴되기까지 한다. 정제성 소설 [엄마의 밥상에는 슬픔이 없다]를 읽어보면, 소설 속에서 장애와 치매가 겹친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보내는 대신 집에서 엄마가 병수발을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90대 노인이다. 엄마는 먼저 방안은 물론 방문을 열면 보이는 마당과 장독 등 아버지 주변 샅샅이 아버지의 추억이 서린 것들로 꾸민다.
엄마는 아버지를 위해 하루 세 번, 1식 5찬 정갈스러운 밥상을 차린다. 밥상은 언제나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음식으로 차려진다. 아버지는 코와 입 등 오감으로 반응하며 밥상에서 추억과 기억을 떠올린다. 엄마는 그 밥상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자주 초대한다. 치매 아버지를 위한 엄마의 생각은 늘 입체적이고 감각적이다. 태생적인 심성과 탁월한 능력이 끝내 신비한 힘을 낸다. 평상시처럼 집안이 돌아가게 하고 사람이 오게 하며, 서로 연결된 끈을 놓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 중요한 매개체가 엄마의 추억이 깃든 밥상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추억은 상실해버린 치매 환자의 기억력도 회복시키는 효력이 있다.
늙은 부모님의 지난 추억 들어주기
벌교 소화다리(부용교) 철교 인근에서 어느 날 노모와 점심을 먹었다.
65년 전 스무살 새댁은 벌교에서 경찰 생활을 하던 남편을 만나려 십리 길을 걸어 와 아래로 까마득히 강물이 흐르는 부용철교를 건넜다. 현기증으로 철다리 위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으면, 누군가 황급히 뛰어와 한복 입은 새댁의 가는 허리를 잡아채 다리를 건너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열차가 긴 기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가난한 삶의 시린 추억과 기억이 그려내는 노모의 수채화는, 갓 붓을 놓은 듯 채색이 촉촉하다. 가벼운 술잔을 곁들인 모자간 정담의 시간이 긴 세월을 넘나들며 이어졌다. 노모의 전설 같은 추억과 다소 시끄러운 시골 이야기들이 묵언수련 같은 노모의 일상을 깨트리고 있었다. 노모에게 내려가면 일부러 노모의 젊은 날의 시간을 묻곤 한다. 그러면 이미 들려주었던 이야기일지라도, 신물이 넘어오듯 한 맺힌 추억일지라도 노모의 기억에는 생기가 솟는다. 마치 활동이 정지된 기억의 공장이 풀가동되는 거처럼 활기차다. 입으로 추억을 쓰며 뇌 운동을 시키는 것이다.
노모가 들려주는 추억을 나는 메모를 하곤 한다. 고단하고 슬픈 세상이었지만 당신이 살아온 자취소리는 곧 내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시리거나 아름답거나 지금은 체험할 수 없는 서늘한 서정도 있다. 자주 당신의 추억을 기억해내도록 해드려야 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훨씬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초롱초롱한 기억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시골 할머니들은 틈만 나면 모여 옛날이야기를 즐겨 꺼낸다. 물론 한 마을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이들이라 공유하는 추억과 기억도 풍성하다. 미처 자신이 기억해내지 못한 이야기를 누군가 꺼내면 그리 반가워할 수가 없다. 시골 할머니들이 치매를 잘 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유명한 모 여가수는 오랫동안 어머니가 치매를 알았단다. 가족들조차 기억에서 지워버린 어머니가 어느 날 당신이 좋아하던 트로트 노래를 불러주니 따라하더란다. 이후 당신 세대가 즐겨 부르던 노래 수십 곡의 노래를 불러주면 가사 하나 안 틀리고 따라 불렀다는 것이다. 아마 노래 한곡마다 서린 추억이 기억을 되살렸던 모양이다. 기억력이 떨어진 어른들에게 추억을 회고 시켜주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시 쓰기를 통한 기억력 회복
83세 김술남 할머니가 시집 [노을을 울리는 풍경소리]를 펴냈다. 이 시집에는 다양한 소재의 시들이 담겨 있는데 특히 3부 ‘자취소리’에는 할머니의 지나간 삶이나 추억을 반추하는 시들로 묶여 있다. 능숙한 시적 기술이나 기교 없이, 지나온 삶의 자취소리를 자연스럽게 시로 쓴 것이다. 이들 시는 문학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 부모나 할머니가 당신들이 지난하게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려주면 대부분 젊은이들은 진부하게 받아들이거나 그 가치를 폄훼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지나간 추억을 시로 그려내는 작업은 기억력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일종의 문학 치유이기도 하는 것이다. 산문의 자서전 쓰기와 유사하지만, 기억되는 소재를 짤막한 시로 표현해 보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책 베껴쓰기를 통한 뇌 훈련
기독교 신자들이나 불교 신자들은 사경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 두꺼운 성경을 두 번 센 번 베껴 써서 책으로 제본을 해두기도 한다. 불교 신자인 내 어머니도 지금까지 사경한 노트가 여러 보따리이다. 그 가운데 일부는 유명 사찰에 가 있다.
성경이나 불경이 아니라도 읽기 쉬운 문학서를 사경해도 좋다. 문학서를 사경을 하다보면 삭막해진 감성조차 되살아나게 된다.
독서(특히 수필집) 하기
독서를 자주하는 것도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 개인 사정에 따라서는 인문서 등을 읽기도 하겠지만 치매 예방을 생각하면 나는 수필집 독서를 추천하고 싶다. 우선 대부분 수필은 쉬운 문장체로 되어 있다. 또한 수필은 사실적 체험 문학이다 보니 그 소재들에서 공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수필을 읽다보면 잊혔던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저자의 상황과 자신을 비교 하게도 된다. 수필이 자신의 추억이나 체험을 자극하여 기억력을 회복을 돕는 것이다. 예컨대 조성원 수필가의 ‘동그맣던 시절의 유정’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어릴 때부터 겪어온 것들만 소재로 삼아 한 권의 수필집으로 묶었다. 비슷한 세대가 이런 수필집을 읽다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여행하는 느낌이다.
대단히 성공한 사람들이나 유명한 사람들이 아닌, 보통사람의 자서전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 타인의 자서전은 내 이야기를 쓰는 데도 도움이 된다.
문장 지어보기
작년에 [국어사전에 숨은 예쁜 낱말]을 펴냈다. 우리 국어사전에 등록된 말 가운데 품위도 있고, 어감도 좋고, 예쁜 낱말을 추려, 낱말 하나에 여러 예문을 붙여 출간한 책이다. 멋진 우리 낱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못한 채 국어사전에서 죽어 있는 게 안타까워 출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낱말에 어울리는 예문을 쓰다 보니 문장 공부는 당연하고, 자꾸 내 주변 상황을 떠올려 문장화 시키게 되는 경험을 하였다. 한 문장 한 문장 예문을 쓰며 참으로 많은 일과 많은 사람을 떠올렸다. 문장 하나 짓는데 그런 힘이 있을 줄은 몰랐다.
[홍보 전용카페]-온라인 홍보 마케팅 노하우 공유하기
https://cafe.naver.com/free59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