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마음 치유여행, 순천 선암사와 전통야생차체험관에서 얻은 것들

by 해들임 2019. 7. 29.

요즘은 작은 도시에서도 ‘마음치유’라는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세상살이 하며 받은 상처로 마음의 병을 얻은 이들이 적잖다는 뜻이다. 마음의 병은 감기 떨어내듯 쉬 치유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여러 해가 걸린 내 경험상, 병든 마음은 자연을 통해 치유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얼마 전 태풍 다나스가 아랫녘을 뒤흔들 때, 후배인 김광현 시인의 안내로 이상범 원로 시인과 선암사와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을 다녀왔다. 단 몇 시간 머물렀으면서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과 선암사를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곳이 우리나라 최고의 힐링 공간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내게는 오랫동안 더께처럼 두려움이 쌓여 있었다.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야, 나는 그 두려움의 실체를 보았다. 밤이면 온수동 사무실 옆 커다란 운동장조차도 걷지 못할 만큼 두려움의 무게는 나를 짓누르며 빙의해 있었다. 이후 조금씩 밤길을 걸을 때마다 그 두려움을 스스로 심각하게 느꼈다. 치유가 필요한 병이었다. 내 안에서 이를 몰아내야 살 거 같았다. 두려움의 극복은 나를 살리는 길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겪어서는 아니 될 가족사와 삶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해 쌓인 이 병은, 돈 한 푼 없이 출판사를 시작하며 더욱 깊어졌다. 출판사 창업 이후 한 해가 지나자 위기가 일상이었다. 사무실과 배본처 임대료, 직원들 봉급, 거래처 결제 등등이 사방에서 옥죄였다. 우리 통장은 밑 빠진 독이었다. 겨우 하나를 해결하면 곧장 또 다른 것이 숨통을 조였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데, 돈 대신 두려움만 쌓여갔다. 매일 빚단련을 당하며 자존심이 다치는 게 두려웠다. 핸드폰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지배하였다.

온수동에서 두려움을 무릅쓴 채 가로등도 없는 밤길을 걷다가, 사무실을 지금의 문래동으로 옮기 후로는 주말을 이용해 안양천 밤길을 다섯 시간씩 걸었다. 주로 밤 아홉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였다. 내 안의 어둠을 어둠으로 다스려갔다. 차츰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평화를 즐기며 걷게 되었다. 갑자기 나타나는 어둑서니나 깊은 겨울밤 새청을 지르며 날아오르는 왜가리와 맞닥뜨리면 쓰러질 듯 소스라치던 내가, 밤길을 걷다 해찰을 부리는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이 밤길을 걸으며 자신을 다스리기 전에는 한 달 후에나 닥쳐올 일인데, 벌써 한 달 전부터 근심을 앓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보름, 일주일로 근심하는 기간이 줄어들었다. 뱃심이 늘었다고나 할까. 끝내 아무 일 없는 하루가 될 것을, 지레 걱정하느라 에너지를 빼앗기며 산 셈이다. 이젠 눈앞이 캄캄해지는 일이 한 사흘 전이라도 아직도 ‘사흘이나 남았네.’ 한다. 어떤 어려움이든 ‘잘 될 거야’라는 믿음이 커진 것이다.

선암사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걸었다. 흙길은 신작로처럼 넓었다. 하늘이 보일 듯 말 듯한 넓은 숲 터널이었다. 터널 안으로 푸른 냄새가 쏟아져 내렸다. 계곡을 끼어 내내 물소리를 들으며 올라갔다. 비가 내려 새소리는 없었지만 물소리만으로도 마음이 울렸다. 천천히 그리고 쉬어갈수록 숲의 정기가 나를 감쌌다. 조계종과 태고종의 최고 사찰인 송광사와 선암사를 품고 있는 조계산은, 신령한 기운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두 사찰은 천년이 넘는 숨결이 이어지는 곳이다. 거대한 양대 사찰에서 울리는 목탁소리와 독경과 더불어, 1천 년이 넘도록 불심이 스며든 산이 조계산이다. 얼마나 많은 수행자와 세인들의 고뇌와 번민이 다스려졌을까. 불심과 하나 된 조계산 자체가 사찰이며 부처님이요, 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멩이 하나, 나뭇잎 하나에도 우리는 가질 수 없는 기운이 흐르는 거 같았다. 세속적인 말 한마디조차 이 숲에서는 불경스러워 침묵을 이어가며 걸었다. 마음은 자연스레 숙연해지고, 영육이 산화되어 숲속으로 스며들었다. 불어난 계곡물이 하늘을 메운 숲을 울렸다.

안양천 밤길에서는 묵주기도를 하며 걸었었다. 하지만 금세 해매가 끼어들어 분탕질을 쳤다. 그 시간만큼은 세속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근심은 태풍처럼 어둠 속 나를 흔들어대곤 하였다. 사로잡힌 세속에서 벗어나려 애쓰지 않아도, 선암사 숲길에선 어떤 분심(分心)도 없었다. 흔들리는 이파리처럼 가벼워진 마음이 숲길을 둥둥 떠가는 듯하였다.

숲길을 걷자니 가수 단야가 부른 노래가사가 떠올랐다. ‘마음 치유가’라고나 할까.

 

다시 시작처럼

 

땅거미가 밀려오면 하루 깃을 접고 / 숲속 같은 은행나무 푸른 보금자리 / 참새들도 지쳤는지 몸을 뒤척이네 / 해매 낀 듯 흔들리는 우리 티끌세상 / 마음 잃고 길을 잃어 어디로 가나 / 꿈을 잃고 풀기 없이 어디로 가나 / 다시 시작처럼 꿈을 일으켜요 / 윤슬 같은 당신 영혼 눈이 부시도록.

웃음살은 간 데 없고 거친 바람소리 / 꿈마저도 앵돌아진 메마른 세상 / 마음 잃고 길을 잃어 어디로 가나 / 나를 잃고 풀기 없이 어디로 가나 / 다시 시작처럼 나를 일으켜요 / 하늘 닮은 내 몸엔 빛이 담겨 있어 / 푸르른 바다, 힘찬 브리칭, 그들처럼 우꾼하게.

다시 시작처럼 꿈을 일으켜요 / 어둑새벽 일어나 여명을 보며 / 다시 시작처럼 나를 일으켜요 / 동살 퍼지는 아침, 맑은 기운 받아 / 다시 시작처럼 나를 일으켜요 / 휘진 어깨를 펴고, 다시 추슬러요 나를!

 

안양천 밤길에서 성가와 함께 이 노래를 무던히 듣고 다녔었다. 살아가는 날이 찌뿌둥하고 힘들 때, 이 노래가사를 음미하며 선암사로 오르면 기운이 우꾼하게 솟구칠 듯도 하다. 휘지고 거칠어진 마음을 정화하거나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자 이곳을 찾는다면 선암사를 먼저 들르는 게 낫지 싶다. 선암사 오르는 길 오른쪽에 있는 전통야생차체험관은 선암사에서 7~8분 못 미치는 곳이다.

선암사는 말 그대로 천년 고찰이다. 사찰 뒤꼍이며 경내 나무 하나, 돌담, 돌계단 하나 관광하듯 스치고 말 일이 아니다. 시간을 완전히 버린 채, 걷는 듯 마는 듯하며 구석구석 느끼다 보면 선암사 기운이 마음 깊이 흘러들어 상처들을 어루만져줄 것이다. 조계산과 천년 고찰의 정기가 자신을 사로잡는다는 걸 느끼게 된다. 부려 놓으려 안 해도 자신이 부려지는 곳이었다.

선암사 사유를 끝내면 다음 코스는 깊은 산중에서 하룻밤 묵을 전통야생차체험관이다.

이번에는 이상범 시인의 녹차 시집 출간을 위해 전통야생차체험관을 찾았지만, 영육의 쉼을 얻기 위해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선암사 입구에서부터 이곳을 떠날 때까지 묵언을 하며 걷고 지냈으면 한다. 선암사가 경이롭고 숙연한 곳이라면, 전통야생차체험관은 쉼의 환희를 주는 곳이다. 층층이 몇 채의 전통가옥으로 이루어진 체험관은 사찰 같은 모양새다. 본래 순천은 차 고장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특히 허균이 사랑하였다는 ‘순천차’는 예전부터 유명하였다. 순천 승주읍에는 신광수라는 차명인이 차밭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전통차 체험관이니 계절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겠지만, 전통야생녹차 맛과 향을 음미하며 힐링 시간이 주어진다면 내게는 그것이 전부일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차의 맛과 향기는 더 표현해 무엇 하랴. 사방이 탁 트인 전통 한옥 차방에서 바라보는 숲속 정취가 더해 영혼과 육신을 맑히는 차 시간을 더욱 평화롭게 하였다.

어느 절 주지스님이 마당 한 가운데 큰 원을 그려놓고는 동자승을 불렀다.

“내가 마을을 다녀왔을 때, 네가 이 원 안에 있으면 오늘 하루 종일 굶을 것이다. 하지만 원 밖에 있으면 이 절에서 내쫓을 것이다.”

동자승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배가 고픈데 원 안에 있자니 온종일 굶어야 하고, 그렇다고 원을 벗어나면 절에서 쫓겨날 신세였다.

마을로 떠났던 주지스님이 돌아왔다. 하지만 동자승은 온종일 굶을 필요도 없었고, 절에서 쫓겨날 일도 없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선택을 하였던 것일까.

동자승은 한참 고민하다가 스님이 그려 놓은 원을 빗자루로 깨끗이 지워버렸다. 원이 사라졌으니 원 안에 머무는 것도, 원을 벗어난 것도 아니게 된 것이다. 동자승은 원을 없애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마음에다 부질없이 올가미를 채워 구속되어 산다. 또한 스스로 그려놓은 원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곤 한다.

동자승처럼 그 원들을 빗자루로 쓸어버리고 금세 자유로워지면 좋겠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리 쉬 다스려지는 우주인가. 그럼에도 나는 잠시지만 체험관에서 삶도, 사랑도, 가족도, 일도 나를 옭아매는 모든 걸 내려놓은 채 ‘태초의 나’를 찾아 즐겼다. 도시를 도망치듯 빠져나와 시골 어머니께 와 있어도 도시가 계속 집적거려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어찌 어머니조차 생각이 안 날까.

무엇보다 차 체험관이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까닭은, 이곳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요하고 깊은 산중의 전통가옥 방에서 하룻밤 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바람이 일으키는 흥분으로 아무래도 쉬 잠들지 못할 것이다. 속세의 불빛과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 어둠 덮인 숲속 시간이 아까워 어찌 눈을 붙일까. 술을 마신들 취하기나 할까. 사랑하는 여인이 그립기나 할까. 이곳에서 바라보는 별은 작히나 맑을까. 여름이면 여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숲이 들려주는 청명(淸明)한 소리를 그대로 옮기기만 해도 아름다운 수필이 될 듯하다. 여기서 머문다면, 세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향해 밤새 이별의 편지도 쓰고 싶다. 또 험한 출판 시장에서 지금껏 견뎌온 나를 향해서도 애틋한 편지 한 통 쓸 것이다.

체험관에서 아침 눈을 뜨면 다시 선암사로 올라갈 일이다. 체험관 옆에는 선암사로 오르는 또 다른 길이 있다. 경내에서 아침 산책을 하며, 조계산 무아의 경지로 이끌어준 신에게 경배할 것이다.

 

도시 사람들은 종종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 영육을 부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출퇴근 없이 한달 이상 사무실에서 지낼 때가 있다. 사무실이 있는 빌딩을 크게 벗어나지도 못한다. 그러다 한참 후에나 어두운 기운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어나자마자 일감을 챙기던 습관을 벗어나 인근 안양천으로 산책을 나간다. 거기에는 푸른 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지천으로 깔린 꽃이 있고, 내(川)와 나무에는 새들이 오가고, 풀숲에서는 시끄럽도록 풀벌레가 울어댄다. 그제야 나는 벗어남의 여유를 찾으며, 사람은 자연을 멀리할수록 삭막해진다는 것을, 마음의 병을 얻게 된다는 것을 세삼 깨닫게 된다. 도심을 흐르는 안양천에만 가도 이럴 진데, 조계산 정기가 넘치도록 서린 선암사와 전통야생차체험관은 우리나라 최고의 마음치유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일본여행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중이다. 일본이나 그 밖의 외국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자신을 추스르며 고요히 치유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지천인 우리나라만 하랴. 단 한 번도 외국여행을 못해봤지만 전혀 부러울 것 없는 이곳을 나는 종종 찾게 될 거 같다.

내 나라 내 땅이 얼마나 좋은가. 또 가보고 싶은 곳은 얼마나 좋은가.

관광과 여행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