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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드림출판사 이승훈 대표 출연, 사진으로 보는 MBN 사노라면

by 해들임 2024. 10. 22.

MBN 휴먼다큐 사노라면 제작팀에서 방송 영상이 담긴 USB를 보내왔다. USB를 받고는, 며칠 전 어머니와 내가 출연한 658회 방송을 보면서 넋을 잃은 채 빠져들던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방송되던 날(2024년 10월 13일 오후 8시 20분), 나는 일부러 서울에서 내려와 있었다. 모자(母子)가 평생 처음 출연하는 방송, 언제나 산중 같은 고요가 무겁게 내려앉은 시골집에서 어머니 홀로 시청하게 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함께 시청하는 순간조차, 어머니와 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재색할 의미로운 시간이 아니겠는가.

방영 시간이 다가올수록, 과연 어머니와 내가 함께하는 시골 일상이 어떻게 그려질까, 몹시 궁금하였다. 저녁상을 마주한 어머니와 나는, 첫사랑을 만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방송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시그널 음악과 더불어 방송이 열릴 때 흥분하며 설레던 마음과는 달리, 방송이 끝나자 어머니는 못내 아쉬워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열흘 동안 촬영한 장면이 한 시간으로 압축되어 금방 끝나버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와 내가 주인공이다 보니 그만큼 몰입하여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편집도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제작팀의 노고와 프로다운 편집 스킬도 느낄 수 있었다. 짧게, 짧게 찍었다 해도, 열흘 동안 촬영한 분량을 그리 함축하여 엮어낼 수 있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용이야 어떻든, 남들이야 어떻게 보았든, 우리에겐 그동안 보아온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여운이 길었다. 며칠 동안 그 여운은 가실 줄 몰랐다.

방송을 시청하다가 당신이 내 흉을 보는 대사가 나오면 웃기도 하고, 내가 당신을 향해 안타까운 심경을 내비칠 때는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다. 귀가 어두운 어머니의 시청을 방해할까 봐 어머니에게 말을 걸지 못한 채 소주잔을 홀짝거리며 시청하던 나 역시, 어머니 몰래 눈물을 훔쳤었다.

방송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장면들도 있었다. 어머니만 별도로 촬영한 부분이었다. 특히 내가 시골에서 지내다 어머니를 떠나오는 날, 당신이 느낀 허전한 마음을 고백하실 때는 가슴이 미어졌다. 대문을 나서는 나를 담담히 바라보시던 어머니에게 나의 빈자리가 준 아픔이 배가 되어 돌아왔다. 어머니 곁을 더 오래 지켜드리지 못한 채 서둘러 상경하는 내 자신도 안타까울 뿐이었다. 지난 1년 6개월여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동안 어머니가 말씀은 안 해도 내가 있으면 든든하신 모양이었다. 어머니와 더욱 오랜 시간을 보내며 지내야 하는데, 그리할 수 없는 해드림출판사 사정은 앞으로도 여전히 진행형이 될 것이라 마음이 몹시 무겁기도 하였다. 1년 365일 어머니와 함께하는 날들이 오기나 할까….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부분도 어머니의 독백을 통해 알았다. 두 자식을 앞세운 어머니는 내가 생각하였던 것보다 훨씬 더 아파하셨고, 힘들어하셨다는 것도 깨달았다. 참고(慘苦)를 당한 상황에서도 잘 견뎌주신 어머니가 그저 감사할 뿐이었는데, 자식들 마음 아파할까 봐 지내온 내색 없는 슬픈 세월을 읽자니, 어머니를 향한 가엾은 마음이 방송을 보는 내내 들썽거렸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리 환하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평생 찌뿌드드한 내 하늘, 웃을 일 없던 나날이었다. 내가 봐도 활짝 핀 해바라기처럼 웃는 내가 좋았다. 나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란 걸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시골에서 어머니와 나는 대부분 정적인 날들이라 보여줄 게 없다고 하였지만, 막상 편집된 방송을 보니, 적어도 우리에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평소 어머니와 나는 정담을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사노라면’ 제작팀이 촬영 기간 내내 그런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촬영이 때로 힘들기는 하였으나 어머니와 나누는 정담들이 나를 행복하게 한 시간이었다.

방송이 나간 이후 카톡이며 전화를 쉴 새 없이 받았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한결같이 감동이었다는 표현들이었다. 특히 어머니가 곱고 대단하시다는 말들을 쏟아냈다. 어머니가 내 기를 살려준 셈이다. 한편, 어떤 이는 식사를 하면서 시청하다가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라 한참 울었다는 사람, 나와 통화를 하면서 울먹거리느라 말을 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해드림출판사 책이나 해드림출판사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는 사람들에게는, 자칫 간접 광고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아들이지만, 어머니를 위해 무언가 남겨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어머니 구순 때는, 오로지 어머니를 위해서만 쓴 일기를 묶어 [어머니, 당신이 있어 살았습니다]라는 산문집을 출간해 어머니께 헌정하였다. 이 책과 나의 수필들 안에서 어머니는 영원히 나와 함께할 것이다. 이번엔 두 번째로 어머니와 내가 직접 부대끼는 모습을 방송 영상으로 남겼으니 내 나름대로는 흐뭇하다.

주말에는 제작팀에서 보내온 USB로, 어머니 곁에서 방송을 다시 보고 싶어 잠시 시골로 내려왔다. 두 번, 세 번 반복해 시청해도 어머니는 새물내 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상경하면서 어머니와 헤어지는 시간들은 더욱 아프게 다가올 것 같았다. 방송이 나간 이후 어머니와 나는 좀 더 살가워졌음을 느낀다. 나도 어머니에게 더욱 애틋해졌지만, 어머니도 예전에는 쉽게 느낄 수 없었던 묵직하면서도 깊은 애정을 보이곤 하신다.

 

시골집을 에두른 산등성이 숲에서 온종일 폭포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숲을 헤집으며 토해내는 소리들이다.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날씨조차 을씨년스러웠다. 이제 곧 타인의 계절이 돌아올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겨울, 이번 겨울은 어머니와 좀 더 따뜻한 나날이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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