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정당 위원과 광주 미팅이 잡혔다. 아무래도 이발을 해야 할 거 같아, 순천 시내로 나가려고 마을 앞에서 버스를 탔다. 어릴 때는 한찻골로 불리던 마을 위뜸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 나오다 보면, 지금 나는 과거로 회귀하여 사는 듯한 기분이 든다. 24시간 자연의 고르거나 거친 몸짓을 심령의 촉수로 감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문과 창문을 모두 열어둔 채 잠든 시간조차 숲에서 자는 한뎃잠처럼 느껴진다. 어둠 따라 내려온 뒷산 숲의 공기를 자면서도 호흡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새벽이면 일제히 지저귀는 산새들의 잠든 숨결도 스며 있다. 여전히 도시에서 찌든 때가 몸 여기저기서 냄새를 풍기지만 개펄 바다와 숲의 이향이 희석을 해주곤 한다. 시골에서 생활하니 사물을 보는 통찰력도 섬세해지는 듯하다. 이 모든 게 어머니를 잘 둔 덕분이다. 앞으로 몇 년 이 될지 모를 어머니의 여생을 함께하고자 직원들만 둔 채 사무실을 떠나왔지만 알게 모르게 얻는 무형적 가치가 크다. 어쩌면 나는 여기서 나 자신과 회사의 무형적 자본을 키워가는지도 모른다.
10여 분쯤 갔을까. 버스 라디오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지만, 제목이 얼른 생각 안 났다. '엄마야 약해 지지마'라는 가사가 뭉클한 감정을 일으킨다. 문득 어머니나 엄마를 주제로 한 노래만 따로 녹음해야겠다 싶었다. 어머니와 좀 더 지내다 보면 자칫 어머니에게 소홀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엄마를 주제로 한 노래가 소홀해진 마음을 추슬러 줄지 모른다.
엄마의 노래를 생각해보니 먼저 왁스의 ‘엄마의 일기’가 떠오른다. 장사익의 ‘어머니 꽃 구경가요’, 나훈아의 ‘홍시’도 떠올랐다. 그리고 언젠가 불후의 명곡에서 들었던 김진호의 가족사진도 감동이었다.
어머니를 주제로 한 노래를 검색해보다 적이 놀랐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히트곡이 허다하였기 때문이다. 엄마를 소재로 한 노래 히트곡은 쉴 새 없이 터지는데, 문학에서는 ‘엄마를 부탁해’ 외에는 얼른 안 떠오른다. 글로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 식상해지기 쉬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엄마야 약해지지 마’를 검색해 보았다.
정은지의 하늘바라기였다. 그런데 가사를 보니 엄마가 아니고 ‘꼬마야 약해지지 마’, ‘아빠야 약해지지 마’였다. 버스 안에서 나는 뚜렷하게 ‘엄마’로 들었는데 어찌 된 일일까. 하긴 아빠를 엄마로 바꾸어 불러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가사였다.
오늘 아침에도 운동 겸 묵주기도를 나갔다. 개펄 바닷가 강둑길 끄트머리에는 ‘돼지산’이 있다. 돼지를 닮은 것도 아닌데 우린 아주 어릴 적부터 그리 불렀다. 강 건너편 개펄 체험장이 있는 ‘거차’라는 마을에는 두 산봉우리가 겹쳐 있는 듯한 천마산이 있다. 우린 어릴 때부터 매일 이 두 산을 바라보며 자랐다. 개펄 강에서 우리 마을을 바라보면 멀리 섬들부터 크고 작은 산들이 원을 그리고 있다.
돼지산 앞에서 나는 바다와 숲이 버무려진 공기를 숨 가쁘도록 들이마셨다. 미로 같은 향기가 은은하여 자리를 뜨기 싫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콩나물국을 끓였다. 시원한 맛이 더할까 하여 마른 새우도, 명태포도 넣었으나 시원한 맛이 없었다. 섬세한 정성이 부족한 탓이다. 어제저녁 꽁치 통조림을 넣어 조리한 찌개가 남아 어머니 밥상에 같이 올렸다. 이제 어머니 식사 챙기는 일만큼은 자연스럽게 하지만 어머니는 명란젓을 곁들여 몇 숟갈 뜨다 만다. 어머니의 컨디션이 그러하다. 하지만 몇 숟갈이라도 제때 식사를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순전히 감으로 하는 요리라 어머니의 입맛을 망칠 수도 있지만 혼자 계실 때의 불규칙한 식사보다는 낫지 싶다.
나는 애초 어렸을 때부터 반찬 투정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요리를 해도 정밀한 맛을 타격하지 못한 채 대충, 대충이다. 정확한 좌표를 찍지 못하니 맛은 늘 엉뚱한 곳으로 떨어진다. 배만 부르면 그만인 식이다.
어머니가 숟갈을 놔도 나는 꾸역꾸역 아침밥 한 그릇을 다 비운다. 어머니 앞에서 나마저 숟갈을 일찍 놔버리면 당신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아침을 거르며 살아왔던 아침밥이 복수하듯 찾아온 요즘이다.
이발을 끝낸 후 종종 들러 포장을 해오는 식당에서 낙지 복음을 시켰다. 어머니가 입맛 없어 할 때 식욕을 돋우어 주곤 하였는데 오늘은 이조차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시골로 내려온 후 순천 시내 몇 곳의 맛집을 알아두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랫장 국밥을 주문해 올 걸 그랬나 보다.
요즘 초저녁이면 서쪽 하늘 끄트머리에서 커다란 별 하나가 서러운 기억들을 소환하여 외로움을 자극하곤 한다. 금성이 아닐까 싶다. 마당을 서성거리며 나는 한참 별 바라기를 한다. 유난히 밝은 저 별은 왜 자꾸 세상 떠난 형제들을 떠올리게 할까. 가수 정인지의 하늘바라기 가사 일부에서 아빠 대신 엄마를 넣어봤다.
엄마야 어디를 가야
당신의 마음처럼 살 수 있을까
가장 큰 별이 보이는 우리 동네
따뜻한 햇살 꽃이 피는 봄에
그댈 위로해요 그댈 사랑해요
그대만의 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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