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은 단순히 운전자의 실수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무분별한 선택으로 인해 타인의 소중한 삶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차를 운전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이들의 안전을 지킬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음주운전은 그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이며, 이로 인해 피해자가 겪는 고통과 상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습니다. 삶이 깨어지고 가족과 친구들이 겪는 아픔은 운전자의 잠깐의 방심과 무책임으로 인한 비극의 무게를 드러냅니다. 순간의 쾌락을 위해 타인의 인생을 빼앗는 음주운전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2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길을 가다가 여동생과 비슷한 사람이 보이곤 한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깜짝거린다. 어머니 말씀대로 내가 죽어야 끝나는 일이다. 여동생이 음주운전자의 뺑소니 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 딸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은 어느새 서른셋의 생일을 맞아 얼마 전 여자친구와 외할머니와 내가 있는 시골집을 다녀갔다.
아이들과는 달리 어른들은 녀석들을 보면 지 엄마를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없었어도 두 녀석 다 성정 곱게 자랐지만, 볼 때마다 짠하고 아플 뿐이다. 엄마가 있었으면 마음껏 누렸을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온 두 녀석의 삶이 항상 가엾은 것이다.
음주운전 사고를 낸 가해자야 죗값을 다 치뤘다고 생각해 지난 일을 까맣게 잊고 지낼지 모르지만, 피해자들은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신앙적으로는 용서하였고는 해도, 당시 중환자실의 고통스러운 여동생 모습이 떠오르면 지금도 몸서리쳐지는데 과연 용서되었을까, 스스로 자신은 못 한다. 누이 가정을 무참히 파괴하고 우리 가족을 나락으로 떨어트린 그에게 분노가 끓어 술로 꼬박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며 식물인간이 된 여동생을 병시중하던 절망적인 순간들이나, 마지막 눈을 감던 때는 나의 모든 감정적 통점은 상실해 있었다. 내 안에서 극도로 부정된 현실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슬픔을 느끼지 못해 눈물조차 흘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완전히 냉동되었던 슬픔은 여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 서서히 해동되면서 뒤늦게 찾아왔다. 슬픔이 해동되는 시간도 몹시 길었다.
음주 운전이 일으킨 사고가 한 가정을 어떻게 파괴하고, 살아있는 가족에게 평생 어떤 슬픔과 고통을 안기는지 처절하게 당해본 나로서는 더는 운전할 자신이 없었다. 포털에서 음주운전을 검색해 보면 매일 음주운전 사고 소식이 뜬다. 음주운전하다 적발이 되면 면허를 바로 취소하고, 평생 면허 취득을 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그것이 운전자 본인뿐만 아니라, 누구가의 불행을 막아주는 일이다. 운전을 안 해도 조금 불편함이 있을 뿐, 세상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풀잎 이슬이 눈물로 보일 때가 여러 날이었다. 볕 좋은 날이면 내가 아주 먼 나라로 도망쳐 와있는 것 같았다. 차라리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듯 날마다 천둥번개를 치며 작달비라도 쏟아졌으면 싶었다.
세상사 가운데 때로는 은사죽음이 되는 일도 있으나 우리 가족에겐 정녕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그날 저녁 수원에 사는 여동생한테 전화를 받았다. 매년 시험을 보기 전날 밤이면 어김없이 전화를 해와 몸은 괜찮으냐, 마지막 정리는 잘했느냐, 긴장하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보라는 둥 마치 저가 누나라도 되는 양 격려를 해주던 여동생이다. 그런데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 그날따라 시험 이틀 전 미리 전화를 해온 것이다. 당시 나는 사법시험 준비를 잠시 미룬 채 방향을 틀어 다른 시험을 볼 요량이었는데 오빠라 부르는 마지막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일요일 오후, 시험을 치른 나는 곧장 집으로 가면 될 것을 어쩐지 동네 전철역에서 전화를 하고 싶었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바로 수원으로 가자며 몸이 아픈 형과 동생을 데리고 역 근처로 나왔다. 순간 사위스러운 예감이 물밀듯이 밀려와 숨이 막혔다. ‘매제나 아니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수원으로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어머니는 선뜻 무슨 일이냐 묻지 못하는 나에게 여동생의 사고 소식을 털어놨다. 다른 형제는 이미 그 소식을 듣고 일요일 새벽에 수원을 다녀왔지만 시험 치를 내게는 아무런 내색을 안 한 것이다.
‘형이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인데 여동생마저 사고라니….’
어머니는 수원으로 가는 내내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겁에 짓눌려 입을 뗄 수 없던 나는 제발 생명에는 지장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병원에 도착해 넋이 반쯤 나간 매제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수필집 ‘가족별곡’ 중에서
해드림출판사 이승훈 대표, Mbn 휴먼다큐 사노라면 ‘사랑방 효자와 잔소리꾼 어머니’
해드림출판사 이승훈 대표, Mbn 휴먼다큐 사노라면 ‘사랑방 효자와 잔소리꾼 어머니’
해를 거듭할수록 노모 곁을 지켜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절박해졌다. 창업 17년째인 우리 해드림출판사가 하...
blog.naver.com
'주요 포스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년 우리의 미래를 형성할 12가지 기술 예측 (0) | 2025.01.01 |
---|---|
처음 끓여 본 꽃게라면, 과음한 다음 날 해장국이 되다 (0) | 2024.11.11 |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김남국 전 의원을 비판한다 (0) | 2024.11.01 |
MBN 휴먼다큐 사노라면 어느 모자의 이별 풍경 (0) | 2024.10.31 |
MBN 휴먼다큐 사노라면 시골집 마당에 세워진 두 개의 비석, 그 사연은? (0) | 2024.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