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전 의원이 SNS에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김 전 의원의 글은 처음부터 나를 화나게 한다. 김 전 의원이 자신의 입장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촛불 동참을 강요(?)하는 것은 시비할 일이 아니다(다만, 지극히 감정적인 표현이 좀 예의가 없긴 하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행위를 심하게 폄훼하는 것은, 김 전 의원의 마인드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보여준다.
“이 시국에 에세이 독후감 소감을 SNS에 올리다니요. 정말 너무 부적절합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정말 눈치 없고 생각 없는 페이스북 메시지는 제발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원으로서 힘 빠지고 화가 납니다. 도대체 이런 이상한 페이스북 글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텃밭에서 뒷짐 지고 농사나 짓고 책방에서 책이나 팔고 독후감이나 쓰는 것이 맞습니까?”
문학을 포함한 우리나라 출판문화 종사자는 수백만이다. 오래전부터 이쪽 불황은 만성질환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출판문화 환경 자체이다. 부쩍 요즘 들어 출판사나 책을 제작하는 인쇄소 등이 문을 닫는 곳이 늘어간다. 우리는 이미 대형서점들이 망해가는 현실을 수차례 목격하였다. 이런 현상은 우리 국민 독서율이 OECD 국가 중 언제나 하위를 맴돌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종이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종이값 뿐만 아니라 여타 책 제작비도 고물가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니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는데 늘 허덕이게 마련이다. 이들은 코인 살 돈도 없다. 더구나 코인으로 대박을 터트릴 능력도 없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적극적인 정치 행위도 중요하다. 하지만 배고픈 서민들에게는 누가 집권을 하든 실생활에는 직접적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우리나라 정치가 지금껏 그래왔다.
출판문화 환경이 이처럼 열악한 가운데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 가운데 꾸준히 독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책을 소개함으로써 독서를 통해 국민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려는 노력을 해온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독서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정치적 행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는 갈수록 삭막해지는 국민 정서를 여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독서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삶이 팍팍해도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극단적 생각을 하는 까닭은, 독서량 부족에서 오는 정신적인 힘의 결핍 때문일 수도 있다. 이를 치유해가는 것 가운데 하나가 독서이기도 하다.
국민정서를 가장 험악하게 만든 주범들은 바로 정치인들이다. 지역색으로, 이념으로 국민의식을 세뇌하여 서로 헐뜯고 싸우게 하거나, 극단적인 사고로 매몰된 국민을 수없이 양산한 이들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물론 요즘에는, 돈벌이 목적으로 정치 유튜브를 운영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의 독서 부흥을 위해 애쓰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행위를 정치적인 잣대로 경솔하게 재단해서는 안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평산책방을 창업해 우리 국민의 책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도 기여하였다. 책 장사를 신선놀음으로 여기는 천박한 의식은 버렸으면 싶다.
노벨문학상이 수상된 이래 123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누가 되었는지보다 더 역사적인 사건이다. 한강 작가의 문학적 성과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자부심이 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수상 발표 당시의 뜨거운 반응이 금세 식어가는 모습은 안타까운 일이다. 문학과 예술이 사회와 경제에까지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한강 작가의 수상 열기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필요가 있겠으나, 정부나 어느 정치인도 나서는 걸 못 봤다.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엄청난 지적 재산을 활용할 줄도 모르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싶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 우리나라 출판문화 시장에도 긍정적 바람이 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한강 작가 책을 출간한 대형출판사 두 곳과 서점들만 신났지, 내가 기대한 바람은 불지 않는 듯하다. 이것이 출판문화를 대하는 우리나라 속성이다. 이런 때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 소개는 노벨문학상 수상 분위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일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문재인 전 대통령이 소개한 에세이집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의 조승리 작가는,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이다. 김남국 전 의원은 자신의 몸집을 불리기 위해 정치를 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신보다는 이웃의 몸집을 불려주기 위해 책 소개를 하시는 거 아닐까.
솔직히 나는 책 소개를 꾸준히 해주신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불만이 많았었다. 지금까지 소개하신 책들이 역사서나 철학서 등 묵직한 분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수필집들이 수두룩한데, 누구나 부담 없이 독서할 수 있는 이런 수필집들도 좀 찾아서 소개해주시면 어떨까 싶은 개인적 아쉬움이 있었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인 수필집이라도 1년에 열 권도 안 팔리는 현실에서, 이번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에세이집 소개는 내게 참으로 반가울 수밖에는 없었다. 모르긴 해도 조만간 또 다른 에세이집을 소개하실지 모른다. 그 에세이집은 X에서 활동하는 트친의 에세이집일 것이다.
책은 모르고 정치만 아는 정치인들은 사라졌으면 싶다. 우리 삶에는 정치적 정서보다 문화예술적 정서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마지막으로, “텃밭에서 농사나 짓고 책방에서 책이나 팔고 독후감이나 쓰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지, 김남국 전 의원은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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