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의 샘 그리고 슬프지만 따스한, 「가족별곡」
1). 가족 중심 소재의 수필집
수필가 이승훈(본명 이재욱)씨가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가족 소재 중심의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을 내놓았다. 자칫 신변잡기로 비하될 위험성이 있는 가족을 소재로 에세이집을 묶은 데는 남다른 가족사의 애환 때문이다. 저자는 이 비감스러운 삶의 여진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작품마다 은밀하게 깔았다. 두 형제를 잃은 후부터 수필을 쓰게 된 저자에게 그 아픔만큼 생생한 소재는 없었을 것이다.
가족은 정(情)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족의 정(情)처럼 아름다운 휴머니즘은 없다. 가족의 정(情)은 인간의 가장 맑은 기운이요, 태고연(太古然)한 가치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니 우리는 춘사(椿事)를 당해 참혹한 고통을 겪기도 한다. 여기서 독자는 어쩌다가 눈물 한 번 훔치는데 그칠지 모르지만 저자는 비문을 쓰는 심정으로「 가족별곡」을 써왔다고 한다. 이는 저자가 가족을 사랑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저자는 10여 년 전, 다섯 살 위의 형과 두 살 아래 여동생을 거푸 잃었다. 저자 나이 불혹 직전이었다. 음주 운전자에게 뺑소니 사고를 당한 여동생은 석 달 동안 참혹한 중환자실에서 머물다가 마지막 눈물 한 방울 유언처럼 흘리며 떠났다. 뇌종양 말기였던 형은 두 해를 좀 넘게 버티다가 호스피스 병실에서 피폐할 대로 피폐한 채 역시 저자 곁을 떠났다. 이들의 그리움이 가슴에서 이랑지거나 참고(慘苦)를 겪던 형과 누이가 떠오르면 저자는 아직도 피톨이 역류하며 살이 떨린단다. 아내도 자식도 없는 미혼의 저자에게 당시의 슬픔이 온새미로 파고들었던 모양이다.
2. 가족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두 형제를 잃고 저자는 가족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따라서 「가족별곡」에서 저자의 모든 중정(中情)은 사랑한다는 외침이다. 특히 세상을 떠난 형과 누이를 향한 눈물 갈쌍한 외침이다. 아픈 줄 알면서도 자꾸 끄집어내듯 스스로 아픈 곳을 찔러 연단하며 희망을 다지는 모습이 짠하다. 꼭 가정의 달이 아니라 해도, 「가족별곡」의 이런 정서를 통해 가족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정리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수필을 문학적으로 비판할 때 신변잡기라는 표현을 흔하게 끌어들인다. 수필을 잘 모르는 사람의 몹시 궁색한 매도라 할지라도 저자는 여기에 휘말리지 않고자 나름대로 승화의 애를 썼다. 단순한 감정 배설이 아닌 순화된 감정의 애상미(哀傷美)가 함씬 배도록 어휘 하나 선택을 하는데도 마음을 기울였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토막생각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오래도록 여행하다가 난숙해서 돌아온 생각들로 채운 것이다.
지천명을 넘어서야 가난도 외로움도 사랑할 줄 아는 힘을 얻었다는 저자는, 「 가족별곡」의 출간이 새로운 삶의 변곡점이기를 희망하면서 형과 누이의 영전에 이를 바친다고 하였다. 또한 살아 있을 때보다 더욱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단다. 더는 아프지 않고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저자는 이번 책을 내면서 ‘가족 이야기는 길게 쓰는 만큼 아팠다. 글을 쓰다가 나는 자주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슬픔을 안추르고 치유하며 또 아픔만큼 그들을 사랑했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난 그들에게 조금도 떨어지지 못한다. 살아가는 날이 종종 두려울 때도 있다. 10년 전의 고통이 어제 같은데 언젠가는 그와 같은 이별을 또 맞게 되는 삶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두려울 만큼 삶이 힘들 때는 오늘 하루만 생각한다. 멀리 보면 더욱 두렵거나 절망적이다. 어떻게든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면 희망이 보인다.’라며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함께 내비쳤다.
3. 수필가 이승훈
한편, 이승훈(李承勳. 본명:이재욱)씨는 1959년 전남 순천 별량에서 태어나, 뒤늦게 경남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다. 이후 10여 년 동안 사법시험 준비를 하다가 형과 여동생을 잃고서 그만 꿈도 접었다. 군데군데 패인 가슴 속 허방을 디디며 걷던 어느 날, 우연히 수필과 인연을 맺은 그는 수필을 쓰면서 더욱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또한 수필 앞에서 더욱 겸손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미학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는 것이다.
수필은 저자를 전혀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문학을 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출판인으로 거듭나게 하였다. 문예지의 편집장 일을 하다가 또 출판사로 자리를 옮겨 끝내는‘ 해드림출판사’를 품었다. 지인들과 더불어‘ 테마수필’을 기획하여 꾸준히 발간해온 일은 저자에게 나름대로 커다란 의미가 있다. 또한, 지난해부터 저자는 수필전문지「 수필界」를 계간으로 발행하는 중이다.
4. 판매금의 일부를 적립하여 첫수필집 지원
「가족별곡」은 판매 수익의 일부를 적립하였다가 작품은 있으나 형편상 첫 작품집 출간이 늦어지고 있는 수필가들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물론 지원 받은 사람이 작품집을 출간하면 마찬가지로 판매 금액의 일부를 다음 사람을 위해 적립하여야 한다. 사실 자비출판 문학시장에서는 제대로 된 작품집 한 권 내기가 쉽지 않다. 이쪽 분야의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주변 수필가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저자의 고뇌이다. 하지만 판매량이 미미하면 그 희망마저도 없을 것이다.
<서지정보>
이승훈 저
면수 288쪽 | ISBN 978-89-93506-14-3 03810
| 값10,000원 | 2010년 04월 22일 출간| 문학| 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