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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용인시갑 예비후보 이상식 ‘멈추지 않는 도전’, 해드림출판사 출간

by 해들임 2024. 1. 4.

프롤로그는 일반적으로 책을 출간할 때 펴내는 글이나 서문 대신 쓴다. 책을 출간하다 보면 프롤로그가 아주 특별한 감동을 줄 때가 있다. 부산경찰청장과 국무총리민정실장을 역임하였던 이상식 저자의 프롤로그가 그러하다.

문재인 후보와 이재명 후보 곁에서 노무현·김부겸의 길을 가고자 하였던 그의 이야기다.

 

멈추지 않는 도전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용인시갑(처인) 예비후보

-전 부산경찰청장, 전 국무총리민정실장

 

그날은 정확히 2016년 9월 17일이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출근한 월요일. 경찰 현안 협조를 위해 지역 국회의원 사무실을 방문하고 청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인사과장의 전화를 받을 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청장님, 죄송하지만… 이번 인사에서 경찰 그만두시게…….”

전화기 너머 인사과장의 말이 또렷하진 않았으나, 분명했다. 나는 ‘그래 알았다’고 짧게 말했다.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나는 짧게 반응하곤 했다. 아버지가 나보고 경찰대학 가라고 할 때도, 총리실 근무를 그만두고 대구에 내려갈 때도, 대형로펌을 마다하고 현재 소속으로 옮길 때도, ‘예’ 아니면 ‘알겠습니다’가 내 대답의 전부였다. 이미 정해졌거나 또는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 정해진 일들에 대해 왈가왈부해 보았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곁가지에 매달리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미 힘든 일도 한번 겪었던 터였다. 그랬기에 크게 두려워할 것도, 거리낌도 없었다. 갑작스런 퇴직이라니. 예상치 못한 통보였지만 나는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담담했다. 아니 담담하려고 노력했다.

 

식당 아주머니에게 라면 한 그릇을 부탁해 깨끗하게 비웠다. 오후 1시에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그간의 노고에 감사한다. 당분간 휴가를 내겠다. 후임자가 오기 전까지 치안 유지에 만전을 기해달라. 이제 나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살겠다.’ 그리곤 사무실을 나왔다. 이제 내가 필요없다는 데 얼른 나가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오기였다.

사무실을 나와 관사에 들러 중요 물품만 챙기고 나머지는 경주 어머니 집에 알아서 가져다 놓으라고 말했다. 내가 몰던 차가 부산을 떠난 시간은 오후 3시 인사발령 통보를 받은 후 정확히 4시간 만이었다. 나중에 나는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탄핵을 당하고도 관저에서 며칠간 꾸물댄 전직 대통령을 비난하곤 했다. 또 다른 오기였다.

대구쯤 지날 때였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전화가 왔다.

“청장님 언제 다시 부산에 오십니까?”

나는 못되게 대답했다.

“부산요 다시 안 옵니다”

 

9월이라 아직 해가 길었다. 여주JC쯤에 도착하자 석양이 물들었다. 서울도 오랜만에 가는구나. 그 상황에서 희안하게 콧노래가 나왔다. 위기 때마다 나를 지켜준, 나의 낙천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만들어낸 자기방어 메카니즘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지난날의 상념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경찰대학을 나와 대한민국의 경찰로서 헌신해왔다. 젊은 날의 혈기와 욕망을 절제하며 성실하게 쌓아 올린 연륜을 인정받아 치안정감까지 올랐다. 최고위직 경찰총수를 목전에 둔 상태였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기왕지사 이렇게 된 이상 나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처음 들어올 때도 내가 좋아서 경찰에 들어온 것은 아니지 않았나. 그러니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 직을 떠나도 무슨 큰 미련이 있겠는가?

경찰제복은 내 몸에 착 달라붙듯 어울렸지만 왠지 경찰이라는 직업이 내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많았다. 내가 경찰관의 길로 들어선 건 순전히 가정형편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2남 2녀를 다 대학까지 보내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양보를 해야 했고, 공부를 잘했기에 선택이 가능했던 내가 양보의 주체였던 까닭에 타의로 경찰에 입직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경찰을 사랑하지 않거나 임무에 소홀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찰에 대한 나의 사랑과 자부심은 후천적인 것이었지만 강렬한 것이었다. 더욱이 엘리트 출신으로 장래 총수후보로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만큼 나는 진실로 곤색의 경찰 제복을 사랑했다.

어쨌든 나와 경찰의 헤어짐 그리고 그렇게 끝난 내 인생 1막은 해피엔딩은 분명 아니었다.

그날 나는 다짐했다. 열심히 살았고 원칙과 소신을 지켰는데도 하루아침에 쫓겨나야 하는 이런 삶은 살지 않겠노라고. 장기판 위의 졸처럼 가라면 가고 그만두라면 그만두어야 하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장기판을 내 의지로 움직이는 삶을 살겠노라고. 그러면서 저녁노을을 아름답게 물들인 저 태양이 내일 아침 또 다시 떠오를 것임을 굳게 믿었다.

 

내 인생 2막은 생각보다 빨리 올랐다. 1막의 주 무대가 공직이었다면 2막은 정치다. 2017년 3월 나는 부산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와 나란히 섰다. 그리고 파란색 종이학을 공중으로 던졌다. 종이학은 두둥실 날아올랐다. 그 순간 나는 내 인생 전반부를 보낸 공직생활을 지배했던 ‘책임과 명예’의 굴레에서 벗어나 종이학처럼 저 높은 하늘로 솟구쳐 날아오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정치를 시작하면서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본다. 시골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왔다. 상당한 성취도 있었다. 그러나 안주하지 않고 항상 큰 꿈과 포부를 가지고 도전하며 살아왔다. 역경에 처해 비굴하지도 않으며 성공에도 오만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말과 행동에 책임지며 살아왔다. 내가 한 행동이 매양 정의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인간이면 지켜야할 보편적인 가치와 원칙에 벗어나는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살아온 과거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 위기와 선택을 포함한 삶의 매 순간에 어떠한 말과 행동을 했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믿는다. 이제 나는 겸허한 마음으로 내 삶의 행적을 세상에 내놓으려 한다.

 

2023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