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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마지막 날 설, 철원 갈말읍 프로방스펜션

by 해들임 2024. 1. 1.

6사단 신병교육대 수료식이 끝나고 우린 철원군 갈말읍 프로방스 펜션으로 갔다.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부 알프스 산간의 익숙한 지명이다.

여기서 나는 문득 문득 장지오노의 단편소설 '나무를 심는 사람'을 떠올렸다. 이 소설 배경이 프로방스 지역이다. 유투브에서 장지오노 나무를 심는 사람을 검색하면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 있다.

소설 주인공 양치기 '부피에'는 황무지가 된 땅에 매일 도토리를 심어, 수십 년 후 숲을 이루고 다시 사람들을 오게 한다. 어떠한 고통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꿈을 이루기 위해 외로움과 싸워 가는 부피에의 삶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힘들고 외롭고 슬플 때마다 나는 '도토리의 꿈'이랄 수 있는 이 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마침 아들 같은 조카 윤후가 있는 88포병대가 이 펜션과 가까워 종종 들르게 될 거 같았다. 펜션 아래는 물살이 센 한탄강이 흐르고, 이곳에서 레프팅도 하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프로방스 펜션은 시련과 극복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홀로 이곳을 찾아 조용히 마음을 추스르고 와도 괜찮겠다 싶었다.

 

약 두 달만의 두 번째 방문이다.

2023년 12월 30일과 31일을 프로방스펜션에서 보내게 되었다. 집에서 새벽 다섯 시쯤 출발해 윤후 첫 외박을 함께 보내기 위해 온 것이다.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시간들이 아우 부부의 목소리에서 스멀스멀 끓어오른다. 부모 마음을 좇기야 할까마는 설레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위병소를 나오는 윤후는 제법 군인다운 채비를 차렸다. 이등병 때보다는 여유도 배 있다. 반가움이 터질 듯 들썽거린다. 녀석도 오늘을 몹시 기다렸던 모양이다. 차 안에서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저 혼자 쏟아낸다.

펜션을 찾을 무렵부터 눈이 내리더니 어느새 소나무 가지들이 찢어질 듯한 폭설이 내렸다.

카페를 갖춘 이 펜션 규모는 상당히 크다. 주 펜션 건물 이외도, 독립가옥처럼 쓸 수 있는 작은 조립식 주택이 여러 채 있다. 우린 방 하나를 빌렸다. 윤후 포함 4명이었지만 어느 것 하나 불편함 없이 쾌적하게 꾸며진 방들이다. 일부 편백나무 벽체와 예쁜 소품으로 장식된 방에는 청결한 싱크대와 그릇들, 요리 도구, 욕실이 어느 고급 숙박시설이나 다름없었다.

금세 사위는 숫눈으로 뒤덮였다. 행여 발걸음 소리라도 들릴까 싶은 숫눈의 숨죽인 고요가 흐른다. 우리도 감히 하얗게 빛나는 성스러운 숫눈을 밟지 못한다. 폭설의 새하얀 기세가 흐르는 가운데 여전히 한탄강의 세찬 물소리가 어둠을 흔들었다. 펜션 뒤뜰 낭떠러지 아래 협곡을 흐르는 한탄강이다. 낭떠러지 아래서 올라오는 물소리는 여름밤이면 밤새 잠 못 이루게 하며, 죽은 가슴도 살려낼 한여울(漢灘 한탄)의 미성이다.

이 추운 겨울에도 물살이 세찬 걸 보면 사계 강물 소리를 달고 사는 프로방스 펜션이다.

윤후가 외박을 나올 때마다 이곳에서 머물 게 된다면 이곳 사계의 정취를 모두 감상하게 될 것이다.

어딜 구경 다니지 않아도 윤후랑 한방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참 감사하다. 아무리 요즘 군 생활이 편하다 해도 군대는 군대여서 윤후를 향한 안쓰럽고 애틋한 마음이 내내 끊길 줄 모른다.

우리 때는 상상할 수 없는 군 생활 이야기를 윤후가 들려줄 때마다 우리는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곤 하였다. 요즘은 선임이 후임 인사를 안 받으면 그도 선임에게 불이익이 될 수 있단다. 우리 군 생활의 일상이었던 구타나 욕설, 얼차려는 꿈도 못 꾸는 현실이었다. 간지럼을 태우는 등 신체적 장난도 허용될 수 없단다. 후임을 대하는 선임이나 상관들도 지극히 인격적이었다. 병사들에게는 세심한 배려가 주어지는 듯하였다. 심지어 상제라는 점수제가 적용되어 정한 점수를 달성하면 포상 휴가가 주어지는 등 군생활이 신기할 정도였다. 우리 때와 비교한다면 코페르니쿠스의 전회이다. 그럼에도 아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현실은 늘 걱정과 염려를 일으킨다.

프로방스펜션은 윤후랑 보내는 일박이일 겨울을 더욱 포근하게 하였다. 밤새 군불 지피듯 방도 따뜻한 데다 수압이 센 온수도 겨울 아침을 상쾌하게 하였다. 윤후를 통해 맺은 우리 가족과 프로방스 인연, 하필 펜션 여사장님 성과 이름이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내 누이와 같아서 인연을 더 의미롭게 한다.

윤후가 귀대할 시간이 다가오자 다들 말이 없어진다. 아이도 미련이 가득한 눈치다. 허긴 예나 지금이나 단 10분도 먼저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곳이 군대 아닌가. 초겨울 밤 어둠이 우리 심연까지 내려앉았다. 다음 만날 때는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하자는 둥, 내일이라도 당장 다시 만날 듯 호들갑을 떨며 아이의 무거운 마음을 벗겨주려 애썼다. 하지만 위병소 철문 안으로 아이를 들여보내야 하는 현실은 외면할 수는 없었다. 아이는 결국 한 사람씩 안아주며 성큼성큼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다만, 아이의 뒷모습은 다들 한사코 외면하였다.

아이를 만나러 가는 시간은 거침이 없었으나 돌아오는 길은 멀기만 하였다.

승용차 안의 침묵도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