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동생 부부가 서울로 떠났다. 어머니와 나는 연휴 동안 어지럽혀진 집 안을 정리하느라 아침부터 구슬땀을 흘렸다. 집 안의 어수선한 기운을 쓸어내듯 방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거추장스러운 물건들을 치웠다. 어머니가 부엌이며 쓰레기들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마당 가 지하수 수도를 틀어 토방을 깨끗이 씻어냈다. 두 손을 쉴 틈 없이 놀리면서도, 머릿속엔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방송국 휴먼 다큐 촬영이 어지럽게 떠돌았다. 어제저녁 메인 작가가 오늘 오후 2시까지 도착하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오늘은 아마 앞으로 일주일 동안 촬영할 레이아웃을 잡을 듯하다.
나는 사실 동적인 미학보다는 정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편이다. 반면 방송은 아무래도 동적인 미학을 앞세우는 듯하다. 애초 나는, 60대 중반 아들이 92세 노모와 살면서 하루 세 끼 식사를 챙기거나 함께 산책하거나, 함께 오일장을 보는 모습 등 어머니의 일상을 이것저것 챙기는 그림을 정적으로 그려내는 줄 알았다. 따라서 어머니와 나만 있으면 되지 싶었다. 하지만 방송 작가들은 동생 부부도, 이웃들도 등장시킬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작가가 염두에 둔 이들이, 심지어 동생 부부조차 선뜻 방송 촬영 승낙을 안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노출하는 일이 부담스러울 거라는 짐작은 한다. 내게는 절대 안 된다고 버티던 동생 부부도 작가가 직접 통화를 하고서야 승낙을 받아냈다.
채 한 시간이 안 되는 방송분을 촬영하기 위해, 작가를 비롯한 방송 제작팀은 일주일 동안 숙식을 하며 고생해야 한다. 회사인 방송국 처지에서는 제작비를 투자하는 것이니, 휴먼 다큐 제작팀은 높은 시정률의 다큐를 생산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내게도 부담이 스며들었다. 밋밋한 어머니와 나의 일상이 행여 방송국이나 제작팀에게 손해를 끼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럼에도 프로 중의 프로인 메인 작가의 역량을 믿을 뿐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로망이 되는 방송 작가가 편한 직업은 아닌 듯 보인다. 촬영 전 출연자 섭외부터 그들의 치열한 현실을 봤기 때문이다.
오늘 촬영은 간단히 끝냈다. 어머니 사경(寫經)하는 모습과 내 일하는 모습, 24년여 동안 어머니가 쓴 30권의 사경 노트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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