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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남편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을 입증해 보이려는 듯 잠자리를 요구해왔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찌 화평의 한마디 말도 없이 나를 거저 취하겠단 것인가. 화성 남자, 금성 여자라는 말도 있듯 이 문제에 관한 한 남성과 여성은 피차 외계인일 수밖에 없는가 보다. 이런 경우 대다수 여성은 형이상학적 존재로 머무는데 남성들은 형이하학적 수컷으로만 변질되는 것 같다. 여성들은 감성과 정신이 우선이고 몸은 후발격인 반면, 대다수 남성은 자발없이 몸이 먼저 성급을 떠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날 밤, 나는 남편의 저돌성에 갈등했으나 그 엉터리 같은 명제를 수용하기로 했다. 헤어질 게 아니라면 협상을 할 수밖에. 한데 바로 그날 나는 오랫동안 갸웃거리며 풀지 못했던 난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나 역시 그 매춘녀들처럼 다른 것은 허락하되 입술만은 완강히 수호했던 것이다. 그건 결코 계산되고 의도된 행위가 아닌 딸꾹질이나 하품처럼 자연발생적 현상이었다. 아, 이런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그녀들 역시도? 나는 비로소 몸속에 숨어 있던 이 한 마리를 똑 소리가 나도록 잡아 없앤 것 같은 산뜻한 기분마저 들었다.
-민혜 수필집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키스에 관한 고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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