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심을 먹는 식당 안이 술렁거렸다. 새벽녘, 인근의 호수 위로 사체가 떠 올랐다는 것이다. 대학원까지 마친 한국 남자가 생을 마감한 곳에서 나는 뜨거운 국물에 밥을 먹었다. 고향의 연못 위에 뜬 부레옥잠을 생각하며 모래알처럼 깔끄러운 밥알을 씹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동구 밖에서 먼 친척의 부음을 듣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에는 ‘빅베어’ 숲속으로 고사리를 뜯으러 간 할머니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뉴스가 있었다. 살진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숲속을 고향 뒷산쯤으로 착각하신 모양이다.
수색대가 며칠을 뒤져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환타지 영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법의 숲처럼 느껴졌다.
나는 달팽이처럼 촉수를 세우고 이곳의 지리와 냄새에 익숙해지기 위해 시가지를 돌아보았다. 울창한 나뭇가지에 새들이 모이는 것처럼 길모퉁이마다 히스패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몇 시간의 일거리라도 얻겠다고 한국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미국의 하층 구조를 거미줄처럼 엮어 가고 있는 그들은 기름진 땅, 한인 타운의 처마 밑에 어느덧 둥지를 틀고 있었다. 어린 날 보았던 부잣집 잔치 마당 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가난한 아이들의 모습과 비슷했다. ‘빨리빨리’를 빨리 배워야만 일당을 채우는 그들에게 분명 한국인은 부유한 상전이었다. 허기진 삶을 이어가는 새 동아줄이었다.
-엄정숙 수필집 [여수, 외발 갈메기], ‘타국에서’ 중
'수필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류 수필가들의 섬세한 표현력 3 (0) | 2024.10.06 |
---|---|
여류 수필가들의 섬세한 표현력 2 (0) | 2024.10.05 |
세 문단 짧은 수필 쓰기, 한잎 수필…휴먼 다큐 방송 촬영 첫날 (0) | 2024.09.19 |
세 문단 짧은 수필 쓰기, 한잎 수필…무제 (0) | 2024.09.19 |
세 문단 짧은 수필 쓰기, 한잎 수필…승용차가 없는 이유 (0) | 2024.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