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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명작산책

수필로 읽는 고사성어, 곡학아세

by 해들임 2025. 2. 17.

학문을 굽혀(曲學) 세상에 아첨하는(阿世) .’을 곡학아세(曲學阿世)라고 한다.

곡학아세는 결국 “학설을 굽혀(曲學)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阿世)”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사사로운 출세욕 때문에 학문의 정도나 신념을 저버리고 가치관을 변절하면서 타협하거나 아부하는 행태’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원래 이 말은 한(漢)나라 시절 무제(武帝) 때 성품이 강직한 학자로 알려진 원고생(轅固生)이 공손홍(公孫弘)에게 했던 말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전하는 출전(出典)은 중국 사마천의 ⟪사기(史記)⟫ ⟨유림열전(儒林列傳)⟩이다.

 

원래 원고생은 벼슬살이를 하다가 어지러운 정쟁에 휘말려 벌을 받고 초야에 은둔하던 노학자이자 원로 정객이었다. 그런데 한무제(漢武帝)가 즉위하면서 원고생을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여 현량(賢良) 벼슬을 제수했다. 인간 세상인 때문일까. 그 옛날에도 남을 헐뜯고 시기하며 모함하는 족속들이 즐비했던가 보다. 원고생의 재등장에 아첨과 모함을 일삼는 벼슬아치들이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나 “원고생은 노쇠했다.”라며 부당하다고 물고 늘어지며 온갖 이유를 쏟아냈던 모양이다. 이에 황제는 원고생의 벼슬을 철회했다. 그 때 그의 나이가 아흔에 가까웠다고 한다.

 

원고생에게 다시 현량 벼슬을 내리던 자리에서 공손홍이라는 사람도 함께 임명장을 수여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공손홍이라는 사람은 재목의 됨됨이나 학문의 수준 역시 내세울 바가 없었을 뿐 아니라 원고생을 우습게 여기고 깔보면서 오로지 출세욕에 사로잡혔던 신출내기에 불과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둘이 함께 임용장을 받던 자리에서 공손홍은 곁눈질로 고고한 자태의 원고생을 봤다(눈치를 봤다)고 한다. 이 때 원고생은 나이 어린 풋내기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는 기록이다.

 

/ 공손 선생은 바른 학문에 진력하여 직언을 올리고(公孫子務正學以言 : 공손자무정학이언) / 학문을 굽혀서(曲學) 세상에 아첨하지 마시게(無曲學以阿世 : 무곡학이아세) /

 

위에서 곡학아세라는 성어가 탄생했다. 이 충언을 듣고 난 이후 공손홍은 많이 반성하고 진솔한 사람으로 변했고 원고성을 흠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 뒤부터 제(齊)나라에서 시경을 연구하고 강론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원고생의 철학과 가치관과 궤(軌)를 같이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결국 제나라 출신 시경을 연구했던 전부가 원고생의 제자였다는 얘기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