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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드림-해꿈-해들임

순천 벌교 88버스, 서울이 잊힙니다

by 해들임 2023. 9. 5.

순천 벌교 88버스

이승훈

 

고향 마을은

순천과 벌교 중간쯤

순천시 별량면 덕산,

순천이나 벌교로 갈 때

유일한 시내버스, 88번을 탑니다

정류장 가까이 다가오는 버스가 보여

헐레벌떡 뛰어가면

88버스는 가만히 기다려줍니다

도로와 맞닿은 마을 들머리에서

버스정류장은 30미터쯤 떨어져 있습니다

무거운 보따리가 없어도

88버스는 정류장이 아닌

마을 들머리에서 세워줍니다

버스정류장에는 가로등이 없습니다

캄캄한 밤 버스에서 내리면

마을길을 찾아 들어설 때까지

버스는 멈춘 채 라이트를 비춥니다

시골 노인이 탑니다

버스 기사가 일어서서

젊은 승객들에게 자리 양보를 부탁합니다

시골 노인이 탑니다

버스 기사가 일어서서

2인 자석을 혼자 차지한 승객을 향해

빈자리를 만들게 하고

노인을 앉힙니다

88버스에서는 버스가

정류장에 완전히 정차해야

승객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순천에서 벌교,

벌교에서 순천 가는 88버스는

포근한 고향 마을을 닮았습니다

88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면

마을 들머리에서 서성거리던

해질녘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88버스를 타면 서울이 잊힙니다

88버스를 타면 세상이 잊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