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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드림-해꿈-해들임

해드림출판사 순천지사 첫 출근하던 날, 8.15

by 해들임 2023. 8. 15.

시골집 창문을 열어놓으면, 밤새 숲의 바람을 마시며 자는 셈이다. 시골집 바로 뒤로는 산이고, 집에서 1km쯤 떨어진 마을 앞은 개펄 바다이다. 시골 생활에서 밤새 이런 자연과 호흡하며 잠들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무엇보다 흡족하다.

새벽 다섯 시, 눈을 뜨자마자 달리기를 준비한다.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운동 준비를 하면 2-30분이 금세 사라진다.

오늘 아침은 특별히 부산하였다. 해드림출판사 순천지사로 첫 출근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광복절이지만 내게 휴일이라는 의미는 별로 없다. 평소에도 주말이라 하여 일과 무관한 시간을 보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아침 운동은 달리기와 3단봉, 그리고 벤치프레스이다. 바닷가로 달려 나가 돼지산이라는 곳 아래서 3단봉을 휘두르며 팔목 운동을 하고, 다시 걷다 뛰다 하며 집으로 돌아오면, 마당에 설치된 벤치프레스로 간단히 운동을 마무리 한다.

샤워 후 부지런히 아침상을 준비하였다. 어머니와 나, 두 사람의 아침상이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나 혼자 먹는 아침이라면 안 먹어도 그만일 뿐만 아니라, 된장국 정도에다 밥 한술 말아도 된다.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입맛 없을 노모를 생각하면, 노모가 특별히 즐겨먹는 반찬 한두 가지는 있어야, 밥 한 그릇을 비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출근을 생각하며 부랴부랴 설거지를 끝냈다. 어머니가 드실 점심밥을 안친 후, 점심 반찬 몇 가지를 챙겨 냉장고에서 꺼내 드시도록 넣어두었다. 저녁은 내가 퇴근 후 차릴 터이니, 점심만 좀 챙겨드시라는 당부와 함께….

가방을 메고 마루를 나서니 어머니가 봉투 하나를 건넨다. 무어냐 묻자, 이따 퇴근 전 책상 위에 돼지 머리고기 조금 사서, 술 한 잔 따라 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순천지사를 열었으니 고사를 지내라는 것이다. 후배의 행정사 사무실과 같이 쓰는데 무슨 고사냐며 한사코 마다하였지만 봉투를 가방에다 쑥 넣으신다. 아들이 가톨릭 신자라는 걸 뻔히 아시면서도 노모의 마음이 그러하신가 보다. 당신 때문에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일하게 된 아들이, 당신 곁에서 더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아닐까 싶었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왜요?”

“오늘이 음력 6월 29일, 니 아버지 생신이다.”

50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신을 지금도 기억하고 계시다니…. 문득 아버지께 죄스럽다. 두어 달 전 산소에다 제초제만 뿌려둔 채 풀을 깍지 못하였다. 오늘이 당신 생신인 줄 알았다면 어제라도 깨끗이 산소 풀을 깎아드렸을 것을.

집에서 마을 골목길을 따라 버스정류장 가까이 왔는데, 시내버스가 막 지나쳐버린다. 사무실 출근은 9시, 첫날부터 지각이다. 다음 차는 20분쯤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아침 버스시간을 알았으니, 내일부터는 여유 있는 출근길이 될 것이다. 시골에서 며칠 출퇴근을 하다보면 나름대로 이곳 일상의 매뉴얼이 잡히지 싶다.

현재 사무실은 호젓하게 혼자 쓴다. 후배가 당분간 다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3-4일 후에는 나도 서울을 다녀와야 한다. 서울에서 처리할 일도 있고, 빠질 수 없는 모임도 있고 해서다. 부쩍 몸이 약해진 어머니를 생각하면, 서울로 올라가도 그리 오래 머물지는 못할 듯하다.

휴일이라 그런지 별로 한 일도 없이 금세 오후가 된다.

그나저나 어머니가 일부러 봉투를 챙겨주셨는데 약식 고사라도 지내야 하나….

어머니 오늘 저녁거리는 무얼 사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