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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의학

인간 한계는 어디인가, ‘박종일, 2023 대한민국종단 622km 울트라마라톤대회 참가기’

by 해들임 2023. 7. 18.

[대회개요]

(대 회 명) 대한민국종단 622K (해남 땅끝-강원 고성/실제 주행거리 : 623.04km)

(대회일시) 2023년 7월 2일(일) 04:00 ~ 7월 8일(토) 17:00(총 150H+ 회복시간 7H)

(대회장소) 해남땅끝 - 강원고성

ㆍ출발지(일시) : 최남단 해남땅끝 (2023년 7월 2일(일) 04:00)

ㆍ도착지(일시) : 최북단 명파해변 (2023년 7월 8일(토) 17:00)

(주최/주관) (사)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

[준비]

“종단을 성공하려거든 상반기에 열리는 모든 대회에 출전하세요”

현재진행형 울트라의 전설 이홍규씨의 가르침은 귀했다. 작년 10월 한밭벌 100km를 시작으로, 11월 제주 211Km를 달렸다. 올해는 4월 청남대 100km를 시작으로 다리가 나무인형처럼 되어 버려서 간신히 완주했던 성지순례 222Km를 달리면서 예열을 마쳤다. 5월 한밭벌 100km, 6월 낙동강 200km까지 무사히 완주한 다음, 태화강 100km를 마지막으로 장거리 달리기 1,000km를 달성하고 나니 사기충천이다.

대회가 없는 주말에는 4~50km를 매주 달렸는데, 거의 6개월간 주중에는 매일 20km를 달렸다. 몸은 이미 출발선에 선 경주마의 흥분상태다. 수십 번을 시물레이션 하면서 내 영혼은 이미 명파해변에서 자유롭다.

 

울트라 대회를 치르면서 배낭과 신발을 새롭게 마련하였다. 홍삼스틱과 파워젤, 단백질바, 사탕 등을 100km마다 쉽게 찾을 수 있도록 6세트를 챙기고, 허리와 허벅지 종아리의 근육을 보충해줄 근육 테이프도 길이별로 넉넉히 준비했다. 예상하지 못한 물집 제거를 위해서 반짇고리 역시 필수품이다. 비옷, 보조배터리, 선캡모자, 선스틱 등 비와 태양 볕을 대비하여 자잘한 것까지 준비를 마쳤다.

 

일주일 전부터 의식적으로 고기를 많이 먹는다. 아내 이냐시아는 그만 달리기를 바라면서도 끊임없이 단백질을 공급해준다. 아내의 정성으로 절반 이상은 달린다. 잠들기 전 바세린을 듬뿍 발라 비닐로 감싸둔 발바닥은 아침이면 어린아이 엉덩이처럼 촉촉하다. 이 촉촉함이 622km를 유지되기를 기원해본다.

 

[대전~해남 땅끝]

이냐시아의 배웅을 받고 광주로 향한다. 터미널 도착해서 근육 깊숙이 단백질이 박혀 일주일을 버텨주기를 바라며 설렁탕을 특으로 주문한다. 느긋한 점심을 먹고 해남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자다 깨다를 반복해도 버스 안이다. 해남은 멀다. 오랜 친구가 해남 터미널로 마중 나와 땅끝까지 바래다준다. 해남에서 땅끝마을 역시 한참을 가야 한다. 자동차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달리기로 올라올 것을 생각하니 혼자 어이가 없다.

[땅끝~100km]

새벽 4시다. 아직 미물들도 깨어나지 않을 시간이다. 31명의 주자들이 대한민국 땅끝에 섰다. 나를 포함한 저들은 마침내 강원도 명파해변에 몸 담그기를 소원한다. 땅끝은 해무가 가득하다. 가로등에 비친 습기는 고운 분말처럼 둥둥 떠다니나 축축하다. 등 쪽에 경광등을 단 모습이 전쟁터로 귀한 정보를 전달하는 파발꾼들의 모습처럼 결의에 차 있다.

 

성호를 긋는다.

‘주님, 제가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다른 선수들과 경쟁하지 않게 하소서. 공종숙 선배의 가르침대로 622km의 끝을 바라보고 달리지 말고, 익숙하게 달린 100km만을 생각하며 달리게 하소서.’

 

출발! 신호와 함께 가벼운 달림질이 시작된다. 몸은 용수철 튀어오르듯 탄력 있다. 해무 머금은 바람은 시원하다. 멀리 오른쪽으로는 바닷가 불빛이 반짝인다. 달림질은 대한민국 최남단의 77번 국도를 사그락거리며 미끄러지듯 거침없다. 22km 지점에서 아침 식사를 위해 잠시 멈춘다. 달릴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온몸이 흠뻑 젖었다. 잘 먹어야 한다. 배변을 잘해야 한다. 잘 자야 한다. 세 가지를 잘하면 명파해변에서 포효할 수 있다고 했다. 아침은 꿀맛이다. 48km 지점 대산기사식당에서의 아침도 꿀이다. 땅끝에서 시작된 길은 청자의 고장 강진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새끼발가락과 엄지발가락 왼쪽 엄지발가락이 한의원에서 침을 맞을 때처럼 따끔거린다. 물집이 잡힌다는 신호다. 낭패다. 아직 100km에 도달하지 않았는데 거대한 둑에 구멍이 한두 군데 난 것처럼 당황스럽다.

 

10시 무렵 성당에서 박종일 이냐시오 622km 완주기원 응원단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멀리 최남단에서 홀로 달리고 있으나 외롭지 않다. 아내를 비롯한 응원단의 화살기도가 속속 박힘을 느낀다. 하늘 높이 솟은 태양은 그늘 한 점을 허락하지 않고 아스팔트에 내리 꽂힌다. 아스팔트는 태양 볕을 품은 후 불가마의 열을 내 뿜는다. 그늘 한 점 없이 태양은 가득하고 여운재는 높게 솟아 멀리 월출산과 맞잡이를 한다. 응원단의 격한 응원과 등에 얼음물 한 병 꽂고 힘차게 전진하는 나의 달림은 아직 거침없다.

 

힘찬 달림 만큼이나 발바닥이 뜨겁다. 따끔거리는 발가락도 심상치 않다. 명색만 휴게소인 곳에 도착하여 각얼음을 주문하니 커피 만들 것 밖에는 없단다. 아이스크림 냉장고에서 성에를 잔뜩 떼어와 대야에다 던져 넣으니 얼음물 흉내를 낸다. 냉큼 발을 집어넣고 화기를 잠재운다. 명색만 휴게소라 해도 아이스 커피는 아이스 커피다. 얼음물에 봉지 커피를 탔으나 할머니가 조제해 준 커피는 별다방과 견줄만하다.

 

7월 2일 오후 5시 15분, 13시간 15분만에 2cp에 도착해서 추어탕을 주문하고 화장실로 달려간다. 땀에 젖은 옷이 염전이 되기 전에 빨아 입는다. 옹색한 그릇으로 온몸에 물을 끼얹는다. 후끈 달아오른 몸은 느닷없는 찬물세례에 몸서리를 친다. 몸이 식어간다. 다시 달릴 수 있는 몸으로 변한다. 물집 잡힌 발가락에 노련한 외과 의사가 환자 몸에 구멍을 뚫듯 망설임 없이 바늘을 찔러 넣는다. 물이 새어나온 곳에 실을 걸쳐두고 스포츠 테이프로 감싸준다. 더 이상 물집이 번지지 않기를 염원해본다.

 

물집이 잡히는 신발을 교체하고 오후 6시 무렵 3cp를 향해 달린다.

 

[100~200km]

내일 비가 예보되어 있어 비가 내리기 전 최대한 거리를 당겨야 한다. 성지순례 울트라때 비에 젖은 신발로 인해 온 발바닥이 물집이 잡혀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어제 같다. 여름날 태양은 늦은 시간에도 맹렬하다. 방금 세탁해서 입은 옷은 벌써 염수가 넘실댄다. 주유소든 담장 없는 길옆 공장이든 수돗가만 보이면 하이에나가 썩은 고기를 발견한 듯 돌진하여 머리를 처박고 머리를 식힌다. 기세등등하던 태양도 석양으로 접어들며 한풀 꺾인다.

 

영산강 자전거길에 접어든다. 태양은 물러나고 이제 사방은 캄캄하다. 자동차의 시끄러움은 사라지고 영산강 출렁거림이 귀를 편안하게 한다. 랜턴을 켠다.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영산강을 밤새 기분 좋게 달리다 보면 3cp 담양 죽녹원에 도착한다. 그러나 느닷없는 졸음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비틀거린다. 아무 곳이나 눕고 싶다. 평상시 울트라 대회라면 두 번째 밤쯤 밀려왔을 수마가 622km 종단 대회 중에는 첫날밤에 찾아오다니..., 당황스럽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한다. 평상시 대비 일찍 취침한 데다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다 보니 몸에 밸런스가 무너진 듯하다. 출발을 두 시간이나 당긴 대회운영본부를 원망한다. 겨우 이 정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원망하는 나를 원망한다. 졸음은 계속된다. 비석 앞 대리석 바닥이 따뜻하게 달궈져 돌침대가 따로 없다. 알람을 30분 후에 맞춰두고 쓰러진다. 등판이 따뜻하다. 알람 울리기 전 잠에서 깬다. 본능적으로 일어나 배낭을 둘러멘다. 이제 속도감 있게 달리면 된다. 밤기운은 시원한데 잠시 달리고 나니 다시 수마가 찾아온다. 자전거길 벤치에 눕는다. 일어나 다시 달린다. 다시 졸린다. 이젠 벤치를 찾을 여유도 없이 길바닥에 쓰러진다. 알람을 맞출 여유도 없다. 될 대로 되라. 이대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포기해버리자. 622km를 달릴 맑은 영혼은 130km 언저리에서 수마에 쫓겨 패배한 채로 널브러진다.

 

‘이대로 잠들면 더 이상의 고통은 없다. 사악한 유혹은 언제나 달콤하다. 주님은 40일간 광야에서 악마의 온갖 유혹을 이겨냈다. 이대로 수마의 유혹에 고개를 숙이기에는 다짐한 것이 너무 많다. 머리를 흔든다. 소리를 지른다. 노래를 부른다. 영산강 어디쯤에서 늦은 밤 홀로 봉사하시며 얇은 메트리스를 준비해둔 봉사자에게 30분을 예약하고 마음먹고 잤다. 다시 결기를 다지고 달린다. 어슴푸레 날이 밝고 아침에 겨우 3cp에 도착해서 시원한 정자에서 한 시간을 더 잤다. 이제 간신히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난 듯하다. 수박을 곁들여서 걸쭉한 미역국과 햇반 한 그릇을 비운다. 역시 꿀맛이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처리하고 옹색한 곳이지만 충분한 샤워를 한다. 호텔 샤워장에 비길 바가 없다.

 

수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담양에서 정읍을 향한다. 재는 평지보다 높다. 산은 재보다 높다. 정읍 가는 길 추월산이 높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진다. 계곡 다리 아래에서 깨벗고 몸을 식힌다. 계곡물이 차갑다. 몸서리를 치게 한다. 펄펄 끓는 머리를 계곡물에 쑤셔 박는다. 쩡~~하고 정수리를 쪼갠다. 엄마 젖 더 먹고 싶은 아이처럼 몸은 계곡에 더 머무르기를 원한다. 나는 아직 갈 길이 천 리도 더 남았다. 염천 달리기에 식은 몸이 밑천이다. 내쳐 달린다. 식었던 몸은 금세 데워지고 드넓은 들판 농수로에 물은 흐르는데 오가는 사람이 없다. 우는 아이에게 젖 주듯 냉큼 옷을 벗고 농수로에 뛰어든다. 드넓은 목욕탕에 홀로 물장구가 개구지다. 거리가 멀수록 즐기면서 가자.

 

통통 튀는 스프링처럼 넘치는 에너지로 7월 3일 16시 05분 4cp 194km 지점에 도착했다.

 

[200~300km]

정읍을 벗어나 전주 시내를 관통하여 완주까지 달린다. 밤시간 전주 시내를 달린다. 태양은 숨었으나 대지의 열기는 남아있다. 여전히 땀은 흐른다. 어두운 곳에서 장례식장은 홀로 불이 밝다. 화장실에 들어가 고양이 세수보다 빠르게 샤워를 한다. 사무실에 들러 뜨거운 물 한잔을 얻어 마시고 식수도 보충한다. 커피도 한 잔 청해서 마신다. 내 조국 장례식장 인심은 후하다. 장례식장 기운으로 열심히 달리는데 누군가 ‘박종일 파이팅’을 외친다. 전설을 기록해가는 현역 울트라넌너 이홍규 씨가 알아보고 힘을 주며 지나간다. 그는 7~8회를 연속으로 622km를 완주하였으나 이번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악마 같은 수마는 두 번째 밤에도 혀를 날름거린다. 버스정류장 벤치보다 길고 폭도 넓은 조경용 의자에 누워 삼십 분 알람을 맞추고 이십 분을 잔다. 다시 어두운 도심을 달린다. 한참을 달리니 이홍규씨가 울트라런너 친구와 함께 음료와 물을 건네준다. 힘내라는 전설의 진심 담긴 한마디가 천군만마다.

 

다행인 것은 지난밤처럼 끊임없이 졸립지는 않는다. 전주 시내를 벗어나 뚝방 길을 속도감 있게 달린다. 참새가 방앗간 찾듯이 공용화장실을 꼬박꼬박 들러 고양이 샤워와 빨래를 한다. 아무도 없는 시간 공용화장실 세면기 앞에서 청소 호스로 샤워하는 맛이 고소하다.

 

새벽녘 도로 가에서 잠시 잠들었다. 날이 샐 무렵 5cp에 도달했다. 잠부터 자고 밥은 나중에 먹는다. 낮에는 태양이 피를 끓게 하고 밤에는 졸음이 땅 아래로 집어삼킨다.

 

6cp에 가면 7시간의 강제 휴식이 주어진다. 귀중하게 사용해야 할 시간이다. 암벽 등반하러 숱하게 찾았던 천등산을 지난다. 낯익은 곳이라 거리가 가늠된다. 대전산악연맹에서 교육기술이사로 활동할 때 전무님이셨던 이기열 형님이 개업한 카페 나마스테에서 따끈한 커피를 청해서 받고 대둔산으로 향한다. 배티재 휴게소에 도달하니 이홍규씨가 어묵과 아이스크림을 전해준다. 달림이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봉사자의 음식이라 입에 딱 맞다. 내리막길에 절대 무릎을 높이 들지 말고 천천히 가라고 천천히를 몇 번 반복한다. 고수의 원포인트 레슨은 귀하고 실질적이다. 끝없는 내리막길을 속도에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내려간다. 어제저녁 속도감 있게 달려서 약간의 무리가 왔던 무릎이 달래진다.

 

대전의 히딩크 모텔 6cp까지 거리가 가늠된다.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나타나 귀향을 환영하듯 선물을 투척해준다.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나온 후 받은 수박 후르츠 화채 한 모금은 몸속 깊숙이 냉기를 전달한다. 복숭아 캔의 시원함과 달달함은 에너지가 듬뿍이다.

 

비가 내린다. 성지순례 울트라 때 젖은 운동화로 인하여 온 발바닥에 물집이었는데 그렇게 고통스럽게 하던 비가 봄철 농부만큼이나 반갑다. 태양의 강렬함보다 발바닥의 젖음이 훨씬 마음이 가볍다. 내리는 비를 피하지 않고 맞는다. 운동화는 젖었으나 뜨거웠던 발바닥을 식히기에는 차라리 젖는 것이 낫다.

 

대전에 접어들어 주말 장거리 훈련 때 달렸던 유등천의 낯익은 길을 달린다. 6cp가 멀지 않았다. 백설공주가 사과를 한입 베어 물은 듯 죽음 같은 깊은 잠을 고대한다.

 

7월 4일 15시 32분 6cp에 도착했다. 멀리서 성당의 응원단 대표 3명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온다. 왈칵 눈물이 흐른다. 막걸리처럼 보이는 마를 넣고 갈은 음료와 함께 비 맞고 달리는 내내 먹고 싶었던 따듯한 부침개를 건네준다. 통신시설과 교통이 부족할 때 명절날 오랜만에 만난 동기간의 반가운 수다 이상이다. 귀한 시간을 너무 많이 뺐는다며 응원단이 물러가고 샤워 후에 침대에 쓰러진다. 3시간 30분을 잤다. 몸은 천근만근일지라도 알람을 맞춰둔 시간보다 항상 먼저 눈이 떠진다. 아직은 명파까지 가고 싶은 욕심이 큰 탓이 아니면 미숙함에서 오는 조급함이다.

 

6cp 출발 전 이냐시아와 회사 지인들이 도착했다. 짐을 꾸리며 대화를 나눈다. 일각이 귀한 시간 그들의 응원은 가슴으로 박히고, 나는 사기가 충천한다. 6cp에서 천국 같은 7시간의 회복시간을 사용하고 다시 300km를 달릴 힘을 얻는다.

 

[300~400km]

대전에서 청주~음성~충주를 더듬으면 남은 거리는 200km다. 이냐시아와 지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내던진다. 유등천 곳곳에서 개구리들이 구애를 위해 악다구니를 쓴다. 개굴개굴 울음소리는 박자 맞춰 달리기에 안성맞춤이다. 개굴개굴 헛나 두~~울 개굴개굴 헛나 두~~울, 비 오는 밤 자연과 소통하며 달리는 런너는 즐겁다. 새벽까지 가랑비는 계속된다. 지인들의 응원과 꿈같은 달콤한 잠 출발 전 내가 좋아하는 국밥을 포장해와 먹여준 이냐시아 덕분에 달림질은 최고다. 원촌교 직전에서 공사를 하느라 천변을 뒤집어놔서 주로가 진창으로 변해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길이 끊긴다. 건설자재를 몇 번 뛰어넘다가 도로 옆 경사로를 올라 포장도로를 달린다. 일주일 전 주로 점검을 마쳤다고 한 대회본부의 처사가 원망스럽다. 다음 주자들을 위해서 대회본부에 공사 위치와 도로 상황를 알려준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한다. 내리막길을 돌진하는 새벽녘 트럭의 기세는 맹렬하다. 빗길과 어둠 속에서 등에 매단 경광등만이 나를 지켜줄 생명의 불빛이다. 생명불이 켜져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다. 새벽녘 몇 군데의 편의점을 지나며 먹거리를 보충하고 출근시간 대 청주 시내에 진입한다. 비는 그쳤다. 차량 흐름에 방해되지 않게 적당히 신호를 무시하고 달림질을 계속한다. 이 아침에 땀을 뻘뻘 흘리며 홀로 달리는 마라토너의 심정을 출근길 시민들의 짐작으로는 헤아릴 수 없을 터다. 바삐 움직이는 시민들과 괴리되어 더 바삐 달리는 나는 자유롭다.

 

휴대폰만 켜면, 몰라도 좋을 온갖 정보들이 정크식품처럼 유혹한다. 더욱더 자극적인 뉴스를 제공해서 열어보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줄줄이 차례를 기다리며 봐주기를 기다린다. 약간의 지식을 얻고 우쭐감도 없지 않으나 대부분이 쓰레기다. 나는 지금 휴대폰을 들고 달리지만 오로지 내 위치만 파악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어제의 일로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어제도 달렸을 뿐이다. 내일 무엇을 할지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내일도 달릴 것이다. 350km 7cp를 향하고 있는 몸은 조금씩 지쳐간다. 달리고 있는 나는 지금 너무도 자유롭고 행복하다.

 

7cp에서 소머리국밥이 나오기 전 식당 화장실에서 고양이 샤워를 한다. 씻고 먹고 배변하고 자는 것만이 명파에서 환호할 수 있음을 이제 몸으로 깨닫는다. 긍정의 마음은 덤이다.

 

소머리 국밥 한 그릇은 20~30km를 달리게 한다. 지치기 전에 준비한 파워젤과 홍삼 스틱을 투여하고 전해질제를 물에 타서 먹는다. 흘리는 땀 만큼이나 식염 포도당을 먹어야 한다. 옷에 쌓인 소금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부드러운 옷은 목욕탕용 이태리 타월로 변한다.

 

7cp를 지나 8cp를 향한다. 재 넘는 길, 산길은 힘들다. 길게 이어진 국도는 줄어들지 않는 거리 때문에 지친다. 8cp를 10km쯤 앞두고 있는 36번 도로 위 울트라 런너는 더위와 피로 졸음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교량 난간에 몸을 기대며 반쯤 잠이 든다.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어온다.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데쟈뷔가 오는 건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려 애쓴다. 고함을 지른다. 양쪽 뺨을 후려갈긴다. 두렵다. 힘들고 지치고 졸립고 줄어들지 않는 거리 때문에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주님, 제가 졸음으로 인하여 차도로 뛰어들지 않게 하소서. 주님 제가 헛것을 보지 않도록 하소서. 주님 제가 포기하지 않도록 저를 이끌어 주소서.’

부끄러우나 꺼이꺼이 울음을 삼키며 기도하는 모습을 응원단에 올렸다. 8cp에 7월 5일 18시 45분 통곡과 함께 도착했다.

 

[400~500km]

여자부 일등을 거의 휩쓰는 공종숙 선배의 가르침은 진실이었다. 8cp에 도착해서 다시 몸을 정비하고 나니 바닥났던 체력은 다시 리셋되었다. 지하수로 샤워하고 한숨 자려고 누운 곳의 실내온도가 23도로 맞춰졌다. 더위 먹은 주자들을 위한 배려였으나 샤워 후 휴식을 취하기에는 너무 추웠다. 잘려고 누웠다가 삼십 분간 덜덜 떨기만 하다가 온몸의 관절이 굳어버린 듯 펴지지 않는 허리를 한껏 구부리고 나왔다. 한숨 자고 왔으면 좋았을 8cp의 아쉬움이다.

 

저녁 11시가 넘은 시간 탄금호에 비친 골프장 불빛은 물안개를 품어 안은 채 몽환적이다. 눈이 즐거우니 달림도 쉽다. 욕심내지 않고 거리를 줄여간다. 눈꺼풀 위 어딘가에 교묘하게 숨어있던 수마가 느긋한 마음으로 방심하고 있었더니 어김없이 찾아온다. 버스 정류장에 쓰러진다. 제법 올라온 위도 때문인지 버스정류장은 서늘하다. 버리지 않고 가져온 비옷을 이불 삼는다. 한결 추위가 덜하지만 포근함은 없다. 잠들지 못한다. 배고픈데 먹지 못하면 달리지 못한다. 수마가 온몸을 덮는데도 잠들지 못하면 비틀거릴 뿐이다. 나는 잠들지 못하고 있다.

 

버스정류장을 박차고 나와 다시 달린다. 시골길 개들은 임무에 충실하다. 가까운 곳에 있는 놈이 짖어대면 멀리 있는 놈도 컹컹댄다. 달빛을 받으며 개 짖는 소리를 응원가 삼아 달린다. 길옆에 농막이 보인다. 살짝 들쳐 보니 야외용 돗자리가 있다. 반은 깔고 반은 덮은 상태로 농막 문을 닫으니 히딩크 모텔 이상이다. 처음으로 알람을 맞추고도 일어나지 못하고 삼십 분을 더 잤다. 다시 몸에 날개가 돋았다. 단숨에 소태재를 넘어 10km를 당겨서 꾸려진 9cp에 도착한다. 고양이 샤워와 빨래 식사 배변을 순서대로 진행한다. 아직은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 귀한 아침 시간이나 충전하는데 공을 들인다.

 

원주 시내를 관통한다. 이른 시간인데 태양 볕은 자비가 없다. 실외기 열기까지 더해지니 원주 시내가 펄펄 끓는다. 오른쪽 발목 통증이 수상하다. 약국에 들러 바르는 파스를 구입하고 몸을 식힌다. 도저히 오늘 태양 아래는 달릴 수 없다. 걷는 것조차도 용기가 필요하다. 몇 시간 걸려 시내를 관통한다. 점심식사로 가장 비싼 메뉴인 막국수와 소고기 불고기를 주문하고 화장실에서 세수만 한다. 손님이 많아 고양이 샤워는 언감생심이다. 손님이 대기하는 곳에서 구겨지듯 잠을 잔다. 에너지를 축적한다. 축적된 에너지로 횡성을 거쳐 5번 국도를 타고 홍성에 접어들면 10cp다. 축적된 에너지는 너무 적고 뽑아쓰는 에너지는 무한대다. 가난한 집 쌀독에 쌀이 줄어들 듯 에너지는 쉽게 바닥을 보인다. 위에서 내리꽂는 햇살이라도 피하고자 우산을 산다. 오른쪽 발은 눈에 띄게 부었고 통증은 심해진다. 우산은 급할 경우 지팡이로도 사용해야 한다.

 

서울에서 지인이 얼음팩을 잔뜩 사 들고 응원을 왔다. 여름날 귀한 귤을 건네주고 꿀 스틱도 한 움큼 쥐여 준다. 먼 외국에서 홀로 여행하다 자국민을 만난 느낌이다. 횡성에서 홍천 가는 길에 부어오르는 오른쪽 정강이를 지인은 걱정스레 바라보다 다음을 기약하며 서울로 향한다. 젖은 몸을 마다하지 않고 안아주며 파이팅을 외쳐주는 그의 눈길에 많은 것이 들어있다.

 

10cp 가는 길 삼마치 재는 하늘까지 뻗었다. 점심때 먹은 막국수와 소불고기 에너지는 진즉에 바닥이다. 파워젤과 홍삼스틱 꿀 스틱으로 영양을 보충한다. 밤늦은 시간 간간이 보이는 경광등을 메달은 주자들이 궁금했는지 지나가던 차량이 문을 열고 궁금함을 묻는다. ‘홍성에서부터 드문드문 보이던데 뭐 하시는 분들입니까?’ 장난기가 발동한다. ‘상상도 못할 걸요?’ 몇 번의 수수께끼를 거쳐 해남 땅끝마을에서 뛰어오는 길이라고 알려주니 입을 다물지 못한다. 궁금증 해소해준 대가를 내놓으라 하니 배즙 캔을 공손히 내민다. 배즙 한 캔의 힘을 보태 삼마치 재를 넘는다. 7월 6일 23시 05분 497km지점 10cp에 도착했다. 샤워하고 보급품을 정비한 후 비어있는 숙소에서 잠을 잔다. 잠결에 주자들이 도착해서 씻는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눈을 감았다 뜨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다. 울트라의 시간은 화살처럼 흐른다.

 

 

[500~584km]

10cp에서 인제대교 직전까지 끊임없이 직진만 하라고 대회본부에서 알려준다. 두 시간을 잔 덕분에 몸은 가벼우나 우측 정강이가 터질 듯이 아프다. 마법처럼 통증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먹지 않았던 진통제 한 알을 투여한다.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따위 통증이 나를 멈추게 할 수 없다. 다섯 번째의 여명이 밝아온다. 달림질은 경쾌하다. 이대로 명파까지 도달할 듯 거침없다. 인제대교까지 35km 거리를 가는 동안 아침 일찍 가게를 연 곳이 없다. 하물며 길거리 찐빵 장수도 아직 포장을 걷지 않았다. 홍삼스틱 파워젤 꿀스틱은 영양은 공급되는 듯하나 포만감이 없어 한 번 사로잡힌 배고픔에 대한 의식은 달리는 내내 서럽게 한다. 아무 집에나 문을 두드려 바나나 한 개와 두유 한 개를 얻는다. 바나나는 껍질째 먹을 기세다. 두유는 달콤하다. 인제대교 직전 편의점에 들러 온몸의 열기를 빼낸다. 사기가 충천해도 모든 것이 문제없어도 우측 정강이의 통증은 어찌할 수가 없다. 소양강을 건너면서 달림질은 멈춰졌다. 소양강 처녀 노래를 한 곡조 뽑으며 11cp 합강정 휴게소까지 걷는다. 11cp에 도착하면 70km 남는다. 과연 코끼리 다리로 남은 거리를 뚜벅뚜벅 갈 수 있을까? 만약을 대비해서 시간을 아껴둔 것이 다행이다. 모든 cp에 기쁜 마음으로 도착했으나 7월 7일 13시 41분 552km지점 11cp에서는 고개를 숙였다.

 

대회 관계자가 발을 보더니 급히 얼음찜질할 것을 권한다. 5분의 얼음찜질로 2시간을 버틸 수 있다고 알려준다. 라면에 밥을 말아먹으며 얼음찜질을 한다. 급한 대로 꽁꽁 얼은 설레임 두 개를 양말 사이에 넣는다.

 

정강이는 시시각각 부어오른다. 부어오른 만큼 통증도 동반한다. 잠시 쉬어갈 시간이지만명파로 가기 위해서는 한시 바삐 움짐여야 한다. 아이싱한 발이 한 시간은 버텨준다. 두시간을 예상한 효과는 반으로 줄었으나 아이싱 효과를 알았으니 근처 편의점의 얼음을 쏟아부어 오른발을 얼린다. 달린다. 통증이 시작된다. 다시 아이싱을 한다. 다시 달린다.

다행히 코끼리 다리는 통증을 감수해 낸다. 이를 악물으니 한계령과 진부령 가는 길 갈림길까지 20km가 쉬이 줄어든다. 나머지 15km는 편의점이 없으니 계곡물로 아이싱을 계획한다. 자신감이 충만하다. 통증이 오른 다리를 마비시키기 전에 한걸음이라도 줄여야 한다. 달린다. 통증이 시작된다. 계곡으로 향한다. 아~~~~얼음장처럼 차가워야 할 계곡물이 미지근하다. 주저앉아 울고 싶다. 아이싱하지 않은 발로는 걷기조차 쉽지 않다.

 

설악 계곡에 홀로 앉아 하늘을 본다. 20km를 내쳐 달려오느라 젖어있는 몸을 바위에 뉘운다. 적당히 달궈진 바위에 등판이 따스하다. 570km를 원 없이 달렸으니 여기서 멈추자. 마음이 축축하다. 눈가에 눈물이 흐른다. 누운 몸은 편안하다. 한줄기 바람이 얼굴을 훑는다. 포기하지 말라고 누군가 신호를 보내는 모양이다. 한발로라도 걷자.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른발을 거의 딛지를 못한 채 절뚝거리며 미시령과 진부령 갈림길까지 걷는다.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아 처연한데도 설악에 안겨있는 또 다른 나는 느긋하다. 대학 산악부때부터 30년 이상을 설악을 다녔는데 오늘에야 홀로 여유롭다. 산악회 동행이 있으면 번잡했고 단독 산행 때는 늘 빡빡한 일정이었다. 느긋하게 설악을 품고 느릿느릿 갈림길까지 더 이상 오른발이 기능을 못 할 때까지 걸어간다.

 

갈림길 입구에 마트가 한 개 있다. 상실감이 컸던 탓에 마트 정보를 미리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쉬우나 나에게 단 한 개의 오아시스다. 얼음을 두 배로 구매하고 물을 구매하여 북극의 차가운 얼음을 만든다. 뼛속 깊이 냉기가 파고든다. 이를 악물고 발을 냉동시킨다. 나를 얼려야 나를 살릴 수 있다. 얼을수록 멀리 갈 수 있다.

 

갈림길에서 진부령 정상 마지막 cp인 12cp까지 오르막 6km를 단 한번의 쉼도 없이 달려 7월 7일 22시 02분에 두 번째로 도착했다. 나는 적토마다.

 

[584~명파해변km]

마지막 cp에서 황태국 한그릇으로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이제 38km 남았다. 회사의 절친 김용성 팀장과 이냐시아 그리고 큰딸이 오고 있다. 천군만마다. 50분 후면 진부령에 도착한다. 잠을 청하며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까지 지켜온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를 깨뜨리고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출발한다. 굽이굽이 18km 동안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마지막 오아시스에서의 아이싱 효과는 사라졌고 발은 아프다. 여름날이라 해도 진부령 정상이다. 달리지 못하니 땀에 젖은 몸은 급속히 체온이 떨어진다. 판단력은 더욱 떨어지고 몸은 경직된다. 속도가 급속히 떨어진다. 비몽사몽이다. 흔들거리다 멈춰선다. 제자리에서 졸고 있다. 몸은 멈췄다.

 

622km 달림 구간 중 가장 비참한 몸일 때 응원군이 도착했다. 황급히 얼음 찜질을 한다. 차를 타면 반칙이니 탈 수 없다고 알리고 걷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설악의 밤이 처음인 큰딸은 카시오페이아와 큰곰자리를 헤아린다, 한걸음이 아쉬운 런너는 하늘 쳐다볼 여유가 없다. 눈앞에 전라도 순천에 있어야 할 큰누나네와 동생이 나타났다. 맑은 정신에는 서프라이즈로 서로가 즐거울 텐데 취한 듯 걷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비현실적이다. 여기가 순천인가? 여기는 어딘가? 응원군 두 팀이 외줄타듯 위태롭게 걷고 있는 런너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갈림길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비포장 산길을 간다. 졸음이 쏟아진다. 수마 대마왕이 마지막 일격을 가하며 나를 짓누른다. 한걸음 한걸음, 서다 걷다, 갈지자의 위태로운 걸음이 계속된다. 쓰러지지 않고 계속 걷는 것이 신기하다, 누군가 쳐다본다. 아이들인 듯 여인네들인 듯 물끄러미 나를 본다. 나뭇가지는 거대한 새의 날개로 변해 퍼득거린다. 한밤의 산속 길은 음습하다. 나는 지금 헛것을 보고 있다. 고개를 흔든다. 아이들이 사라지고 여인네들이 물러난다. 어느 순간 방공호가 길을 막고 등산로가 끊겼다. 길을 잃었다, 차에 있던 동생이 걱정이 되는지 전화가 왔다. 길을 잃었으나 곧 찾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앱을 켜니 등산로에서 한참을 벗어났다. 캄캄한 밤 깊은 산속에서 한 쪽발을 사용하기 어려운데 내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다. 앱에서 깜빡거리는 내 위치와 등산로와의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 절망이다. 등산로의 흔적을 찾으려 주위를 헤집고 다닌다. 더욱더 깊은 숲이 나타난다. 119를 불러야 되나 고민한다. 600km를 달려와서 119차에 타는 순간 나의 종단은 실패다. 심호흡을 한다. 수마 대마왕은 달려야 할 나를 숲속 어딘가에 가둬버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제 졸립지는 않다. 등산로를 찾아야 한다.

 

등산앱을 한참 들여다본다. 이쪽저쪽으로 휴대폰을 돌려보지만 휴전선 근처라서인지 앱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내 위치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등산앱에 내 행적을 기록하는 기능을 활성화하고 몸을 움직인다. 모든 촉각은 길을 찾는 것에 집중한다. 600km를 길 위에서 달렸는데 마지막 22km에서 길을 벗어났다. 다행히 행적이 기록된다. 확인을 위해 반대로 움직인다. 반대 방향으로도 행적이 기록된다. 드디어 내 위치를 파악했다. 등산로에서 150m를 벗어났고 가시덤불과 나뭇가지 사이 150m를 헤쳐나왔다. 퉁퉁 부은 오른쪽 정강이는 나뭇가지의 스침에도 쩍쩍 갈라져 피가 흐른다.

 

밤새 추위와 오른쪽 발의 고통, 길을 찾느라 에너지는 완전히 바닥났다. 죽기 직전에 나오는 힘을 다해 10km를 달렸다. 다시 5km를 좀비의 모습으로 흐느적거린다. 영혼은 명파에 가 있는데 몸은 아직 명파로 향하고 있다. 주저앉아 고개를 무릎 사이에 묻고 비명인지 울음인지를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다. 다시 일어나 흐느적거린다.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 멀리서 김용성 팀장이 마중을 나온다. 한 줌 먼지로 변해있는 나에 비해 성큼성큼 걷고 있는 그의 몸은 장대하다. 한쪽 손은 김팀장의 어깨를 잡고 한쪽에는 등산용 지팡이를 짚고 명파로 향한다. 그저 어깨를 내주는 김팀장은 나의 주님이다. 그렇게 5km를 걸었다.

 

7월 8일 07시 52분 명파에 도착했다.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나를 보며 큰누나는 흐느낀다, 아~~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처절했던 6박 7일의 여정을 끝내고 골인 지점에서 환호했다. 응원해준 모든 이에게 감사드린다.

_끝.

 

[에필로그]

제한시간 150시간 + 회복시간 7H  140시간 52분 + 회복시간 7H 걸렸다.

명파해변에 네 번째로 도착했다. 6일간 등을 대고 누워서 잔 시간은 9.5시간이다.

출발 전과 비교하여 기초대사량은 20kcal, 골격 근량은 0.6kg 늘었고, 체중은 0.7kg, 체지방량 2.6kg, 체지방율 4.2%, 내장지방은 1로 줄었다. 가게 및 식당은 36군데를 들렀다.

신발은 3켤레를 신었고, 양말은 16켤레를 신었으며 옷은 상하 한 벌로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