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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포스팅

해드림출판사, KBS 2TV 생생정보 ‘엄마의 밥상’ 순천 꼬막무침

by 해들임 2025. 1. 25.

새벽녘 일어나니 동쪽 하늘 들머리의 그믐달이 붉다. 사라질 듯 말 듯 가느다란 눈썹달이다. 시골에서 생활할 때면 초저녁부터 새벽녘까지 별자리들은 내게 소멸적 기쁨이 되는 보석 같은 존재이다. 지금은 서산마루에서 붉은 화성이 소멸적 기쁨으로 다가온다. 살아가는 일이 몹시 고단하여도 시골 자연은 여우별처럼 떴다 사라질지라도 내게 소멸적 기쁨으로 다가와 잠깐씩 숨 쉬게 한다. 여전히 새벽마다 내 영혼을 두드리는 수탉 울음이 저 그믐달을 떨어트릴까 불안하다.

나의 시골 삶은 천국과 지옥의 경계이다. 사위가 잿빛으로 뒤덮인 겨울일지라도 시골에서는 차가운 공기마저 이 지상이 천국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기진맥진하는 회사를 생각하면 나는 금세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올해는 제발 펄펄 날 수 있는 기운이 우리에게 스며오기를 바랄 뿐이다.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에게 나는 늘 부채감을 지닌 채 살아간다. 이 나이 되도록 어머니에게 미소가 될 수 없는 삶이 참담하고, 아우에게는 어려울 때마다 신세만 질 뿐 형 노릇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참으로 부끄러운 형이다. 어디 그뿐이랴. 세상 떠난 형이 내게 남겨준 두 딸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살아간다. 형과 형수는, 내 젊은 날 오랜 사법시험 준비의 버팀목이었다. 맞벌이 부부로 살아가면서도 고시원을 전전하며 생활하던 나를 위해 묵묵하게 희생을 감당하였다. 나와 동갑인 형수님은 참 말이 없는 분이다. 아니, 말이 없다기보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 미움 자체를 모르는 분이다. 오랜 세월 함께하였어도 어머니에게든 시동생들에게든 싫은 소리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형이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며느리의 자리, 형수님의 자리를 한결같이 지키며 살아왔다.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시집을 보낸 형수님에게 나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지난해 10, MBN 휴먼다큐 사노라면 658회 출연을 계기로, 이번에는 123KBS 2TV 생생정보 엄마의 밥상편에서 또 우리 가족이 소개가 되었다. ‘사노라면은 나와 어머니 중심으로 방송이 되었고, 이번에는 어머니와 형수가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물론 나는 조연이었다. 이번에도 어머니는 극구 반대를 하셨지만 끝내 촬영을 모두 마쳤다. 겨울철이라 93세 어머니에게 방송 촬영은 무리가 아닐까 내심 걱정이 앞섰지만, 다행히 117, 18, 19일 사흘 동안의 시골 날씨가 따듯하였다. 물론 방송 작가와 PD들의 노고 덕분이었다.

비록 슬픈 가족사가 다시 드러나 마음이 무거웠어도, 이번 방송은 우리 가족에게 또 하나의 빛나는 추억으로 남았다. 조카들을 비롯한 모든 가족이 방송을 보면서 즐거워하였다. 더구나 형수님과 둘째 조카딸 가족을 방송 화면을 통해 본다는 사실은 행복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손주의 깜찍한 모습이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하였다.

MBN 휴먼다큐 방송 때도 느꼈지만, 역시 방송작가와 PD들의 프로 근성은 나를 감동시켰다. 하나의 휴먼 스토리를 창작하기 위해 그들이 애쓴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되지 싶다. 겉으로 보면 화려해 보이는 방송 일이 실제 현장에서는 피땀 흘리는 일이었다. 방송 이면에는 치열한 준비와 노력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화면을 채우는 게 아니라,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끝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93세가 되시도록 어머니는 자식에게 존재감을 드러내신 셈이다. 고단한 삶의 자식에게 어머니는 이번에도 소멸적 기쁨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방송 계기를 내가 만들었다 해도, 어머니가 안 계셨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KBS 2TV 생생정보 엄마의 밥상편이 우리 가족에게 준 가장 큰 의미는 어머니와 형수님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방송 촬영을 계기로 두 분이 자주 대화하고 서로 더 깊이 이해하게 되셨을 것이다. 나는 이 끈끈해진 정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두 분이 겪은 아픔과 고난이 서로 더욱 가깝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방송은 두 분의 동병상련을 어느 정도 치유하는 계기가 되었지 싶다. 방송국과 방송 제작팀에게 이러한 결과를 나는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가족 간의 관계가 회복되고 깊어진다는 의미는 그 어떤 보상보다 값진 일이기 때문이다.

생생정보 엄마의 밥상은 단순한 가족 소개 프로그램을 넘어,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의미와 추억을 선물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화면 속의 우리는 한 가족으로서 서로 위로하고, 다시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과정이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었기를 바란다.

 

KBS 2TV 생생정보 엄마의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