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지내다 서울 사무실로 복귀할 때면 성찰을 하게 된다. 91세 노모를 보살피기 위해 시골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안 어머니에게 최선을 다했을까 하는 것이다. 섬세함과 자상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91세 어머니에게 나는 그동안 경비원 역할 그 이상은 아니었지 싶다. 다만 누군가의 세 끼를 꼬박꼬박 챙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얼마나 오랜 세월 가족의 세 끼를 챙겨왔던가. 우린 그것이 아주 당연한 일인 양 여겨왔지 싶다. 그 당연한 일도 못 되는, 어머니 세 끼를 차려드리는 일이 오히려 어머니를 불편하게 하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어머니가 91세가 되도록 지켜온 고유한 삶의 영역을 침범한 셈이다. 모든 게 서툴기만 한 내가 불현듯 찾아들었으니 나보다는 어머니가 내게 적응해 가는 데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간 나는 어머니가 입맛이 없다 싶을 때 해드린 게 고작 마트에서 파는 짜장면 정도였다. 어느 날 나는 평소 해보고 싶었던 콩나물밥을 시도하였다. 마침 시중에서 양념장을 팔아 미리 준비해두었으니 콩나물밥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쉬운 콩나물밥이라 해도 60평생 요리를 제대로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도 서툴렀다. 어머니와 둘이 먹는 콩나물밥이라 해도 콩나물을 수북하게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허긴 라면처럼 나오는 짜장면도 물 조절을 못해 처음에는 거의 떡을 만들어 어머니께 드렸었다. 어쨌든 이제 콩나물밥은 그럭저럭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랫동안 어머니 홀로 살아온 살림이라 적절한 요리 그릇이 제대로 갖추어졌을리 없다. 엊그제 저녁은 냄비에다 계란찜을 하려다 3분의 1은 태우고 말았다. 냄비처럼 빨리 달구어지는 그릇은 사용할 게 아니었다. 아무튼 요리는 한 번 하면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다. 나중에야 어머니가 계란찜 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미리 물을 조금 끓여 하거나 말 그대로 끓는 물로 익히는 것이다.
요즘 날씨가 더워 점심에는 종종 잔치국수를 해먹는다. 멸치 육수와 양념장이 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싶었다. 어머니와 둘이 먹는 국수 양을 조절 못해 이틑날까지 남은 국수를 혼자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어머니와 함께하면서 우리나라 며느리들의 애환을 이해하였다. 어머니도 내게 툭툭 잔소리를 해대신다. 말 안해도 어련히 하련만 꼭 간섭을 하려 들었다. 잘 드시면서도 잔소리는 덤이다. 무엇을 하든 당신 성에 안 찰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네, 어머니.” 하기보다 서운한 생각이 앞선다. 60이 넘은 아들이 늘 어렵기만 한 회사 일을 희생하면서까지 당신 곁에서 지내는데 안쓰럽지 않으실까. 표현하는 데 서툰 어머니라 충분히 이해는 하면서도, 좀더 자상하게 대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당신 피가 섞인 아들도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면 울뚝 짜증이 나려 하는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며느리는 오죽할까 싶었다. 왜 고부 갈등이 생기는지 이 나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우리나라 며느리들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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