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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91세 어머니와 함께 살기…대신 죽을 수는 있어도 대신 아플 수는 없다

by 해들임 2023. 6. 21.

벌써 장마가 시작되려나 보다. 마당가 울타리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날것으로 들려온다. 온갖 소음 사이로 들려오던 서울의 빗소리가 아니라, 흔들림 없는 고요를 알몸으로 파고 들어, 귀를 간지럽히며 가슴을 설레게 한다. 티 하나 없이 영혼을 가득 채운다. 시골집도 빗소리로 푹 잠긴다. 나는 차양 아래 놓인 평상에서 가만히 몸을 눕히고는 두 팔을 벌린 채 눈을 감았다. 차양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까무라질 듯 아뜩하다.

오늘은 밤새도록 빗소리를 들었으면 한다. 빗소리가 어둠을 채우는 밤이면, 나는 텐트에서 잠을 청한다. 요즘은 잠자는 동안에도 내내 창문을 열어두어 방안에도 빗소리로 가득하지만, 별채처럼 붙은 곳에다 텐트를 쳐두었다. 텐트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을 뿐, 차양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는 머리맡을 두드린다. 밤새 머리맡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내 트라우마를 씻어주길 바란다.

 

60 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누이동생과 형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매일 곁에서 지켜볼 때였다. 누이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 있었고, 형은 암으로 호스피스 병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극심한 통증에서 비롯된 형의 비명 같은 신음을 들으며 호스피스 병실에서 형과 함께 지냈다. 고통스러워 하는 형을 보면 나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누군가를 대신해 죽어줄 수는 있어도 대신 아파해줄 수는 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아프고 힘들었던 시기였다.

 

이상하게 내가 어머니와 함께 지내기 시작할 무렵부터, 어머니는 좌골신경통 통증을 앓았다. 통증은 밤으로만 찾아왔다. 잠을 자다 어렴풋이 어머니의 신음이 들리면 벌떡 일어나곤한다. 가만히 어머니의 방문을 열어보면, 어머니는 주무시지 못한 채 침대에 걸터앉아 통증을 참느라 연신 신음을 토했다. 형에게도 그랬듯이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외에는. 아무리 91세라 해도 사람의 육심으로 찾아드는 통증은 나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두 자식을 참혹하게 먼저 보낸 91세 어머니의 여생에는 고통 없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 할 뿐이다. 사실 내가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어머니 곁을 지키고 싶었던 데는 앞으로 몇 년을 더 사실지 모를 어머니와 오붓한 날들을 꿈 꾸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현실을 외면한 채 그저 감상적인 데만 생각이 미쳤을지 모른다. 정작 어머니와의 동거가 시작되자 그런 감상적 생각은 모두 사라졌다. 나의 모든 영육의 세포는 어머니 기분따라 움직였다. 어머니가 아프면 나는 반사적으로 어두워졌고, 어머니가 밝으면 금세 나도 환해졌다.

 

어머니는 내게 언제나 연민의 대상이었다.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어머니의 삶이 가엾어서 당신을 향한 사랑보다는 늘 연민이 앞섰다. 오비이락었을지라도 그나마 요즘 내가 있어 어머니를 좀 더 편안하게 모시고 병원을 오갈 수가 있었다. 시골에서 순천 시내까지는 대부분 버스를 이용한다. 지금까지 어머니도 늘 버스를 이용해 시내를 다녀오셨다. 그것은 항상 조마조마한 일이었다. 행여 버스를 타고 내리거가 버스 안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연세가 있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승용차를 안 가지고 다닌다. 서울과 시골은 KTX를 이용하고, 시골에서는 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내가 막 시골로 내려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가던 날, 개인택시 기사에게 명함 한 장을 받았다. 이후 어머니를 모시고 시내 가는 날이면 그분에게 미리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러면 그분은 시간에 맞춰 시골집 대문 앞에다 택시를 대기시켰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개인택시 기사는 내 또래의 여자로 운전에는 베태랑이었다.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신음을 들으며 내가 아무리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해도, 서울과 시골의 이중생활 결정은 잘한 일이었다. 이전처럼 홀로 지내시다 그런 심한 통증을 앓았다면, 어머니는 얼마나 난감하고 슬펐을지 짐작이 간다. 자식들이 있어도 91세가 되도록 홀로 앓아야 한다면 어머니가 겪을 비감은 어땠을 것인가.

 

다행히 비는 계속 내렸다. 오늘은 밤새도록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잘 수 있을 듯하다. 잠자리를 텐트로 옮겼다. 어머니의 안방과 떨어져 있어 어머니의 신음을 못 들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다행이 요즘 어머니의 통증이 잦아들었다. 텐트 문을 모두 열어젖힌 채 어둠을 바라보며 잠이든다. 소나기가 세차게 퍼부었으면 하는 바람도 일었으나, 사방을 토닥거리는 빗소리 정도로도 나의 부재중인 서울 사무실을 향한 근심을 모두 씻어낸다. 빗소리로 밤새 몸을 뒤척여도 나의 잠든 얼굴은 평화로워 보일 것이다. 아니, 빗소리로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해도 그 어떤 꽃잠보다 달콤할 듯하다.

시골집 바로 뒷산이 뿜어주는 숲의 공기를 밤새 마시며, 술 취한 듯 비틀거리는 영혼으로 한뎃잠을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