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MBN 휴먼 다큐 ‘사노라면’ 촬영 9일간의 여정을 마쳤다. 이제 다음 주 월요일 서울 사무실에서 한 번 더 촬영하면 모든 일정이 끝난다. 10월 13일 일요일 오후 8시 20분에 방송될 예정이다. 애초 일주일 계획이었으나 촬영을 시작할 때 비가 연사흘을 내려 결국 10일간의 여정이 된 셈이다.
난생처음 방송 경험을 한다는 설렘은 차츰 걱정으로 바뀌어 갔다. 여러 상황을 촬영하였지만, 시청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싶었다.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깨달았다. 시선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도 난감하고, 나도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노출되기도 하였다. 카메라를 든 채 뒷걸음질 치며 걷는 PD 발걸음을 맞춰주지 못한 채 걷기 일쑤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다니는 PD들도 안쓰러웠다. 어머니와 시장을 다녀오면서 시내버스를 타고 내릴 때나 시내버스 안에서 촬영할 때 운전기사들의 불편한 언어도 내 처지에서는 PD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특히 어머니나 세상 떠난 형 이야기를 꺼낼 때는 주책없이 감정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하기도 하였다.
우리 어린 시절도 그리하였거늘, 어머니 젊은 날은 오죽 가난으로 점철되었으랴. 어디 내 어머니뿐일까. 우리 세대 어머니들은 대부분 허기진 보릿고개를 건너왔다. 가난은 그 자체가 설움이었고, 배고픔이었다. 더구나 가부장주의가 팽배하던 시대였으니 남편으로부터 압박받는 나날도 있었을 것이다. 92세가 되어도 잊지 못하는 질곡의 삶이었을 만큼 아픈 세월이어서, 충분히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저런 말씀은 안 하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우리 가족의 슬픈 가족사도 그대로 드러났다. 감추고 싶은 부분도 드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허구로 구성되는 드라마가 아니고 사실을 기반으로 한 휴먼 다큐멘터리 아닌가. 없는 것을 지어내거나 내 자랑이나 하자고 나오는 방송이 아닐 것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보여주는 모습에서 시청자들도 공감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나는 수필가이다. 수필은 허구의 문학이 아니다. 수필은 작가의 실제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한 진솔한 고백이며, 삶의 단면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 속에는 현실의 고통, 기쁨, 갈등, 그리고 감정들이 꾸밈없이 담긴다. 자신의 부끄러움조차도 담담히 그려내는 문학이 수필이다. 휴먼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영상으로 보여주는 수필이랄까….
한 사흘은 어머니도 나도 몹시 어색해하였지만 이후 그런대로 적응해 갔다. 자주 움직이거나 이동
하면서 촬영하므로, 92세 어머니에게는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힘들다고 하면서도 비교적 잘 응해주신 것이다. 평소 아침상을 차려놓을 때까지 주무시기도 하던 어머니가 촬영 기간에는 일찍 일어나 몸단장을 하셨다. 어머니와 대화하다 부딪치는 일도 생겼다. 어머니는 상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셨다. 그럼에도 이번 촬영이 내게는 어머니를 향한 성찰의 시간이었다. 어머니와 지내면서 제대로 살펴드리지 못한 부분을 반성하면서, 좀 더 살갑고 섬세한 아들로 당신 곁을 지켜야 할 거 같았다. 다만 이번 방송을 통해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이 어머니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싶다.
누군가에게는 로망이기도 한 방송 작가나 방송사 PD라는 직업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 상당하다는 것도 알았다. 가족들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며칠을 지내야 하는 그들의 삶도 내 딴에는 안쓰럽게 보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이번 제작을 맡은 두 분의 방송 작가와 두 분의 PD가 참으로 인상 깊었다. 어디서 그런 선한 성정이 나오는 것일까. 촬영 작업이 고단할 텐데도, 친절과 상냥함 그리고 미소를 잃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그들의 프로 정신이 아닐까 싶었다. 그들이 떠난 후 어머니는 못내 아쉬워하였다. 토종닭이라도 한 마리 삶아서 먹일걸 하시는 것이다.
이번 촬영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든, 어떤 감정을 끼치든 어머니가 계셨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내 인생에서 어머니의 존재감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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