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틈새로 흐릿한 빛이 스며든다
금이 간 벽면마다 흔적처럼 새겨진 숨결들
흙내음 속에서 묵묵히 자라나는 작은 싹
멈춰 있던 바람도 언젠가 다시 숨을 고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손길이 돌을 깎아내듯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것
부서진 조각 속에서도 본래의 형태는 흐르며
버릴 수 없는 온기가 심연 속을 데운다
한없이 고요한 울림이 깊숙이 전해져
흔들림 끝에서 만들어지는 무늬
벗어남이 아니라 그 안에서 빚어지는 경이.
갇힌 나락이라는 이미지는 벗어날 수 없는 고난의 감옥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단순히 절망과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삶의 강인함,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새롭게 빚어가는 존재의 신비를 상징한다. 갇혀 있다는 것은 멈춘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그곳에서도 계속된다.
금이 간 벽을 떠올려 보자. 그 균열은 무너짐의 징후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빛이 스며드는 틈이 되기도 한다. 고난의 흔적 속에서 남겨진 자국들은 단순히 상처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는 공간이 된다. 흙냄새가 스며드는 공간에서 자라나는 작은 싹처럼, 강인함은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자라난다.
삶은 때로 돌을 깎아내는 작업과도 같다. 고난은 우리를 억누르거나 길들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빚어지게 한다. 한 번 부서진 조각들 속에서도 본래의 형태는 흐르고, 그 안에는 버릴 수 없는 온기가 남아 있다. 그것은 생명이 가진 본연의 힘이다. 아무리 깊은 나락이라도 그곳에서 빚어지는 경이로움을 막을 수는 없다.
흔들림은 종종 약함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끝에서 만들어지는 무늬는 단단하다. 고난은 벗어나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빚어내는 과정이 된다. 벗어남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뤄지는 성장은 삶이 가진 경이로움을 증명한다.
나락은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새로 태어날 준비를 하는 곳일지도 모른다. 빛은 벽의 금 사이로 스며들고, 숨겨져 있던 온기는 점차 드러난다. 그렇게 삶은, 아프지만 단단해지는 과정을 통해 더 깊은 강인함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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