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다나스가 아랫녘에서 꿈틀거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금요일 오전 8시 40분 열차였다. 서울은 아침부터 뜨거웠지만 순천에는 조금씩 비가 내린다고 하여 용산에서 우산 두 개를 챙겼다. 막상 여행을 떠나기는 하지만, 여든 중반의 시인과 동행하는 길이라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섰다.
이상범 원로 시인은 녹차를 소재만으로 디카시집 출간을 준비하는 중이다. 작년 가을이던가, 김포에서 선생님과 막걸리 한 잔 마시다가 녹차 시집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드렸더니 바로 시작하여 어느새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한 달 전 순천에서 중학교 후배이기도 한 김광현 시인이 올라왔다. 서울 오는 길이면 김 시인은 임의롭게도 항상 나를 찾아주어 소주잔을 기울이곤 한다. 그날 순천 선암사 아래 야생녹차체험관이 있다는 것을 김 시인을 통해 처음 알았다. 마침 이상범 선생님이 녹차 시집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하자, 선생님과 내려오면 안내를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순천에는 벌써 다나스의 소나기가 아우성이었다. 순천역 앞에서 1번 버스를 타면 체험관까지 50분쯤 걸린다는데, 노 시인을 버스로 모시기에는 염려가 되었다. 선암사 입구까지 택시비가 3만 6천 원 정도 나온다고 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김 시인과는 연락이 닿아 있었다. 공무원인 김 시인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될 일이어서, 택시를 타야 김 시인의 점심시간을 얻어 쓸 상황이기도 하였다. 김 시인의 근무지는 체험관 인근이었다.
빗발은 점점 거칠었다. 주춤하였다가 거세지기를 반복하였다. 택시를 탔다고 하니 택시비가 염려가 된 김 시인이 한참 아래로 마중을 나와 김 시인 차로 갈아탔다. 김 시인이 안내한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마친 우리는 체험관을 향해 빗속을 걸었다.
순천이 고향이면서도 선암사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선암사 입구 주차장에서도 한참 걸어 올라갔다. 우산을 썼다고는 하지만 온몸은 금세 물초가 되었다. 다소 경사진 숲길에서 선생님은 안쓰럽게도 힘들어 하는 기색이었다. 손이라도 잡고 걸으면 좋으련만, 선생님과 내가 아무리 아버지와 아들처럼 지낸다 해도, 둘이 여행을 해보니 좀 더 살갑지 못한 자신이 송구스럽게 드러났다.
김 시인한테 들은 전통야생차체험관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전하면서도 나는 바로 내려올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선생님은 서둘렀다. 그런 일이 아니어도, 오래 전부터 누옥이지만 고요한 시골집에서 선생님과 한 번 묵어오고 싶었다. 선생님도 가보고 싶어 하였다. 선생님의 가정사를 잘 아는 터라, 선생님에게는 자주 정서적 쉼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우선 내게 여유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선생님보다 연세가 더 있는 어머니가 홀로 있는 곳이라 자칫 어머니를 어렵게 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1박2일을 한다 해도 주중에는 사무실을 비울 수가 없어 금요일을 택한 것인데, 하필 순천에서 태풍과 맞닥뜨린 것이다. 태풍이 점점 강력해진다니, 내일부터 방에서 뒹굴더라도 최소한 체험관은 오늘 둘러 봐야 내려온 의미가 있었다. 체험관과 선암사를 둘러본 후, 다음 날에는 순천 국가정원과 갈대밭 그리고 벌교와 보성녹차밭까지 다녀올 계획이었으나 예측할 수 없는 날씨였다.
선생님 걸음을 맞추느라 숲속으로 한껏 마음을 부려놓지는 못하였지만 선암사로 향하는 숲 터널은 태고의 정조로 가득 차 있었다. 숲길을 걷노라니 태초로 돌아온 듯 아득하였다. 사무실을 한 발짝만 나서도 8차선 도로에서 내달리는 차량 소음과 탁한 공기로 찌들어 지내야 하는 내게, 선암사 숲길은 폐를 씻어주는 공간이었다. 더구나 태풍 때문인지 인적도 거의 없었다. 길을 오르다 만난 한 여인이 홀로 걷고 있을 뿐이었다. 묵언수행 하듯 혼자 걸어야 숲의 물아일체 경지로 들어서는 길이었다.
선암사는 체험관에서 6~7분 더 올라간다고 하였다. 여러 채의 전통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전통야생차체험관은 부처님만 안 모실 뿐 외관상 사찰이나 다름없었다.
아, 내 고향 순천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소나기가 쏟아져 기와집의 전통 운치가 더욱 도시의 영혼을 빨아들였다. 어머니를 뵈러 시골집으로 내려와도 마음은 언제나 서울을 향해 날름거렸다. 몸은 시골이지만 마음은 도시였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순천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다시 마음이 뒤바뀌었다. 이미 몸은 서울로 가 있으나, 마음은 유폐한 듯 두고 온 시골 어머니께로 가 있다. 순천역은 내 마음의 환승역이었다. 하지만 이 체험관은 들어서자마자 몸과 마음이 딴 데로 흐르지 못하도록 흠뻑 사로잡아버렸다. 아니 숲속을 들어설수록 몸과 마음이 빨려들었다. 눈만 뜨면 생각을 달고 사는 어머니도, 번뇌 덩어리 같은 회사 일도 티 하나 없이 털어낸 채 나를 받아주었다.
이곳에서 문화해설사로 일하는, 단아한 외모의 K 선생이 녹차를 우려 주었다. 김 시인과는 잘 아는 사이였다. 16년 전 수필 등단작 제목이 ‘녹차의 여정 그리고 수필’이었을 만큼, 나도 녹차를 즐기던 때가 있었다. 녹차에는 색과 향과 미가 있다. 종종 야생 녹차를 마시기는 하였어도, 나는 주로 색조를 탐미하여 재배녹차를 마셨었다. 재배 녹차는 색깔이 야생녹차보다 곱게 우러난다. 숫눈 같은 백자 다기에서 연둣빛이 어른거리는 노란 색조를 신비로이 풀어낸다. 야생차는 색은 연하지만 맛과 향이 진하다. 체험관에서 맛본 야생 녹차는 시중의 그것과는 향기와 맛이 달랐다. 선암사와 송광사가 은둔한, 조계산 야생의 맛과 향이 숲의 향기처럼 살아있었다. 입안의 잔향도 잔맛도 오래도록 이어졌다. K 선생이 빈 숙우를 내밀며 향기를 맡아보라 하였다. 다관이면 다관, 숙우면 숙우, 찻잔이면 찻잔, 체험관에서 쓰는 다기에는 녹차 향이 깊이 배어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서 생활하였는지 모르지만 K 선생에게도 녹차의 이향이 풍기는 거 같았다.
비는 계속 내렸다. 어릴 적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먼산바라기로 바라보던 내 모습이 굵은 빗방울 사이로 비꼈다가 사라졌다. 숲에서 물초가 된 몸을 따듯한 녹차 기운이 추스르자 선생님이 붓을 꺼냈다. K 선생과 김 시인의 캐리커처를 그려주기 위해서였다. K 선생의 캐리커처는 내가 봐도 멋이 있었다. K 선생은 평생 녹차를 즐기는 선생님에게 숲과 녹차의 기운이 서린 숙우를 선물로 건넸다. 사실 선생님은 실금들이 무늬처럼 퍼진 숙우를 보자마자 탐이 난 듯한 표정이었다. 서로 귀한 선물을 주고받은 셈이다.
나는 녹차를 마시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K 선생이 나긋이 들려주는 야생녹차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의 모든 신경세포는 숲을 울리는 빗방울 소리를 우르르 따라다녔다. 건너 차방에서 남녀가 나누는 담소가 빗속으로 들어가 웅웅거렸다. 사방으로 트인 널따란 차방에는 숲의 공명이 그칠 줄 몰랐다. 녹음방초(綠陰芳草) 깊은 산중의 대궐 같은 기와집에서 바라보며 듣고 느끼는 소나기는, 맑은 날 찾아와 얻어가는 산중 정취 그 이상의 것을 쏟아내고 있었다.
전통야생차체험관에는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 방들이 여럿 있었다. K 선생이 방을 구경시켜주며 숲으로 난 커다란 창을 열었을 때, 나의 눈과 귀에는 산중 사계의 풍광이 빠르게 스쳐갔다. 소복하게 눈이 쌓였거나 솔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아찔한 겨울 영상은 좀 더 오래 머물렀다. 선생님 시집이 나오면 다시 한 번 찾아와 선생님과 가을밤을 보내기로 하였다.
K 선생의 배웅을 받으며 체험관을 나서자니, 영혼은 놓아둔 채 나서듯 돌계단을 내려서는 마음이 자꾸만 허정거렸다.
****내 나라 내 땅, 가볼 곳이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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