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 저
면수 224쪽 | 사이즈 120*185 | ISBN 979-11-5634-634-0 | 03810
| 값 15,000원 | 2025년 06월 06일 출간 | 문학 | 시 |
문의
임영숙(편집부) 02)2612-5552
책 소개
1. 코로나 시대, 거리에서 시작된 그림의 여정
이상범 시인의 시집 『새』는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고요한 시대에 걸음으로부터 태어났다. 70이 넘은 시인이 적당한 거리의 산책을 일상으로 삼으며 카페 한구석에서 다시 시작한 캐리커처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새로운 예술적 감각의 출발점이 되었다. 마스크 틈으로 빨대를 밀어 넣고 냉커피를 마시던 시절, 시인은 검은 화지 위에 하얀 볼펜으로 속삭이듯 그림을 남기기 시작했다. 컵 속 음료의 잔량을 기준 삼아 그림을 그리던 그 섬세한 감각은, 매일의 일상과 창작의 경계를 허문 고유한 예술 행위였다.
2. 천 명의 초상, 천 번의 만남
시집 『새』에는 1,000명의 얼굴과 함께한 짧고 깊은 인연의 온기가 묻어 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청춘부터 삶의 전환기에 선 이들까지, 시인이 카페에서 그려준 그림 한 장에 눈물을 보이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진심 어린 반응이 시인을 더욱 붓 앞으로 이끌었고, 만년필형 붓을 들고 그린 선들은 점점 더 예술적 깊이를 품게 되었다. 그렇게 2년 동안 쌓아온 천 명과의 만남은 기록이 되었고, 감동이 되었으며, 마침내 시가 되었다.
3. 림에서 시로, 시에서 새로
『새』라는 제목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작가의 눈앞에 펼쳐진 자유롭고도 섬세한 존재들의 비상을 담고 있다. 이 시집은 그림과 감정, 거리와 고요함, 여운과 치유 사이를 날아다닌다. 불가의 42장 경을 염두에 두고 구성된 42편의 시는 한 편 한 편이 소중한 얼굴의 기억을 품고 있다. 시인은 그림을 그리며 시를 썼고, 시를 쓰며 그림을 기억했다. 『새』는 그래서 어떤 회상의 시집이 아니라, 살아 있는 순간들이 펼쳐진, 작지만 단단한 날갯짓이다.
저자소개
1935년 진천
생시조문학 천료(1963)
신인예술상 수석상(1964) 수상
조선일보 신춘문예(1965) 당선
정운시조문학상, 한국문학상, 중앙일보시조대상, 육당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고산문학상, 바움(숲)문학상, 유신작품상특별상 수상, 이설주문학상 수상
시집: 『별』 『신전의 가을』 『풀꽃 시경』 『한국대표명시선100화엄벌판』 『하늘색 점등인』 『녹차를 들며』 등 28권 출간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한국시조사 대표, 포석문학회장 역임
차례
시인의 말 코로나 시대의 여류 인물 풍경 4
발문-우주를 포획하는 이상범의 시학 ┃이근배 186
발문-붓끝으로 읽은 시대 진단, 혹은 원융으로 불러낸 인간애 ┃민병도 198
발문-녹원 이상범 시인의 상상 세계 ┃이숭원 214
Ⅰ
정일품(正一品) 15
피안의 등불 19
단정학(丹頂鶴) 23
큰 산성(山城) 27
케이블카 타고 권금성을 오른다 31
들판엔 메뚜기 떼 35
창변엔 멧비둘기 39
여객기도 소리 죽여 43
친구 47
흰 비둘기 떼 51
잔대 꽃은 꽃자주 빛 55
까치 부부 59
공작새 63
파랑새 67
구절초 꽃 71
더디 사는 법 75
구름 부호 79
까만 별 83
뻐꾸기 소리 87
꾀꼬리 소리에도 노란 향기 91
머리 위엔 새 한 마리 95
Ⅱ
학의 울음 101
히말라야 눈보라 105
꿈 109
깔끔미(美) 113
태풍의 눈 117
물새 떼 121
메뚜기 떼 풀풀 난다 125
동해에 빠진 눈발은 129
칼 새 133
아름다운 숙녀 137
고요 생각 141
산에는 노란 송홧가루 145
노트북을 바라보며 149
깃털 구름 153
평창엔 아직도 “스키 점프 새” 157
화살 같은 햇살 161
입방아 165
조막손의 기도 169
쇠기러기 173
소리 집 177
물총새 181
출판사 서평
우주를 포획하는 이상범의 시학
이상범 시인은 바로 저 향가에서 시의 틀을 잡혀 온 겨레의 시, 시조의 대가이다. 올해 구순의 나이에도 펄펄 끓는 시 정신이며 창작의 맥박이 어느 젊은 천재 시인보다도 앞서서 항상 붓과 노트를 상비하고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시조의 새 경지로 온몸을 던져 몰입한다. 그뿐이 아니다. 조선의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를 그려내듯 시, 서, 화에 필력을 세워 독존의 경지를 이뤄내고 있다. <난 시화집> <펜 시화집> <시화 컬러집> 등에 이어 <디카 시집 >만 일곱 권을 넘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 시단에 이처럼 자유분방 파죽 지경의 시상을 난사해온 시인은 없다. 등단 이후 어디서 어떻게 시신의 영접을 받은 것이지 우주적 삼라만상과 언어의 재구성에 발산하는 초월적 시상은 한마디로 경이롭다.
이 시집의 표제는 <새>이다. 새는 자유롭다. 노래한다. 무한 천공을 난다. 죽지 않는다. 불사조가 있다. 고구려에는 삼족오가 있었다는 전설처럼 불로장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여자가 <새>일까, 여자는 어머니이며 딸이며 아내이며 불멸의 연인이다. 누구도 그런 정의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발견돼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로마 신화의 여신상 비너스는 어떤 언어로도 다 풀이할 수 없는 <우주>이다. 이상범 시인은 마침내 시의 눈빛으로 <우주>를 발견하고 붓을 들어 그 얼굴을 그리면서 샘솟는 시적 감동을 옮겨 쓰기 시작한다. 거리에서도 커피숍에서도 공원에서도 무수히 만나고 스쳐 지나가는 여인들을 볼 때마다 먼저 붓을 들어 그 얼굴을 그려낸다. 누가 허락하지도 않은 절대 보존의 자신을 한 장의 종이에 옮기고 다시 거기 깊이 스며있는 의미를 언어로 바꾸기까지는 사람의 일이 아닌 어떤 절대자 능력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인류의 절반이 여자다. 그 한 몸의 모든 아름다움과 지성과 삶의 경력과 숨겨진 극비의 언어는 얼굴에 있다. 눈, 코, 입, 귀와 머리카락 신비의 형상에서 우러나오는 무한한 스펙트럼은 오직 시인의 영적 감수성에서만 잡을 수 있다. 이상범 시인이 만나는 여자는 하루에도 헤아릴 수가 없다. 스쳐 가는 것, 잡혀 오는 것, 눈을 통해서 가슴에 박히는 것,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구비 치다가, 끓어 오르다가, 확산하다가 점점 이미지로 굳혀가는 과정을 거쳐서 시가 되고 글씨가 되고 그림이 되는 삼위일체의 시, 서, 화가 이루어진다.
<새>의 변용과 이미지의 확산
<새>가 날아들었다. 비둘기, 까치, 참새, 뻐꾸기, 종달새… 저마다 멋진 이름을 달고 고운 소리로 노래 부르며 지저귀는 새들. 그것들 가운데 지금 내가 만나는 새는 누구일까. 눈빛, 고갯짓, 날갯짓 입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소리는 또 무엇인가. 그렇지 이놈 봐라, 시인의 눈은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먼 우주 밖에서 오는 환상과 놀라운 깨우침까지도 받아 적는다.
붓으로 죽죽 그은⁄선이 잠시 꿈틀댄다
흔들리며 제자리로 와⁄ 앉았다
가을 물 서늘한 하늘⁄ 높이 뜨는 단정 학
- 「단정 학」 전문
생각을 따라가는 붓이 그어대는 선이 살아서 천 가닥 만 가닥의 조형물이 되며 꿈틀대고 날아오른다. 어디로 가는 길인가, 무엇이 되려는 몸짓일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절세의 미인이 막 판서한 듯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구나, 가을 물 서늘한 저 하늘에 한 마리 단정학이 높이 솟아오르고 있다.
시조는 본래 초, 중, 종 삼장의 단수였다. 현대라는 복잡 무쌍한 시대를 만나서 연작시로 자유시와 맞서고 시의 함량이 늘어지게 되었다. 그 시대의 변화에 엇시조, 사설시조, 장시조로 분화되기도 했지만, 시조는 초, 중, 종 장이 열고 이어받고 되채기는 아주 불가사의한 의미의 전환으로 사람의 마음을 이리 채고 저리 채다가 대반전으로 뒤집힌다. 이 절묘한 시 형식은 오랜 시의 역사를 가진 나라의 정형시나 어떤 시 형식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극적 비의(泌義)를 내포하고 있다.
-이근배(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시인 작품해설 중에서
붓끝으로 읽은 시대 진단, 혹은 원융(圓融)으로 불러낸 인간애
우선 이번 시조집의 몇 가지 특징을 짚어보면 우선 시조집 부제에서 밝힌 대로 <코로나 시대의 여류 인물 풍경> 378편의 여인이 케리커쳐라는 양식의 인물화로 등장하고 그 가운데 42명에게는 창작 시조를 곁들인 이상범 예술의 백미(白眉)라는 점이다. 더욱이 지구상의 많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 <코로나19>라는 펜데믹(pandemic)을 맞아 위축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에서 아흔에 근접한 노시인의 창발적이고 긍정적인 세상 읽기라는 점에서 시가 넘쳐나도 시인을 보기 힘든 세상의 우뚝한 실천 행동의 전범(典範)이라 하겠다.
다음으로는 이번 시조집에는 시인의 예리한 붓 터치를 통해 그의 필생토록 갈구해온 인간애가 드러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가 지나온 시간의 기록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피부색이나 표정, 주름살과 같이 밖으로 나타나는 외장 하드뿐만 아니라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을 겪어낸 정신의 반응기록이 고스란히 내장되어 있다. 얼굴은 지나온 과거의 현재 모습인 동시에 미래로 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세상 그 어디에도 같은 얼굴이 없으며 같은 행동반경을 지니지 못한다. 그 독자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축약된 우주 질서의 천차만별한 모습 앞에서 망백에 이른 이상범 시인은 사람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만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번 시조집 『새』는 <자서>에서 밝힌 대로 고독과 불행, 설상가상으로 맞닥뜨린 코로나 19의 위기를 딛고 일어서기 위한 극기의 한 방편으로 나선 산책으로부터 비롯된다. 노구를 끌고 몇 시간을 걷자면 의당 쉼터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그는 주로 차 한 잔 마시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휴식이 공유되는 카페를 택해 공동체로서의 인간애에 합류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림에 남은 대상물을 소재로 확장하고 상상력을 궁구하여 장르 간의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가 없다. 이는 그가 이미 여러 권의 디카 시조집을 통해서 확보한 독자적인 사고의 배양과 이념의 확장이라는 성과에 힘입은 결과라 하겠다. 오늘날의 현대적인 미의식이 고스란히 노정된 첨단 패션과 화장술, 시대의 기운이 여지없이 투영된 물상이야말로 얼마나 귀한 시적 동기이었으랴.
거기에 더하여 이번에 선보인 42편의 시조가 지닌 굳건한 정형성의 질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유시의 유입과 맞물린 현대시조는 불필요한 형식실험 등의 핑계로 적잖은 정형성의 훼손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조를 시조의 정체성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자유시와 비견하려는 사시(斜視)로 접근한 까닭이다. 시력 60년이 넘는 시인의 경우 그간 형식에 관한 한, 일고의 의구심이나 흔들림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익숙한 것과 지루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서구미학에 노정된 젊은이들이 자유시의 배행법이나 행갈이에 흔들리는 혼란스러움에도 말 없는 본보기를 제시해온 것이다.
어떤 의도나 욕심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면 사물의 본디 모습을 놓치기가 쉽다. 붉은 색안경을 끼고 푸른 바다를 읽어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긍정과 부정, 이기심과 이타심의 경계에서 읽어내는 대상과 몸짓, 표정의 현재는 과연 어떤 존재론적 의미와 가치로 비쳐졌을지 궁금하다.
그가 그린 그림 가운데서도 시조를 곁들인 데에는 나름의 기준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그 가운데 무작위로 몇 편을 골라 시인이 읽어내고자 한 시간에 대한 해석, 존재에 대한 의미와 사색, 시대의 미의식 탐구라는 잣대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지난 가을밤엔
초록별도 많이 쏟아져
지금도 옷섶엔
별이 아직 남아 있다
몇 광년 가야 할 초록별
마스크 속 까만 별
-「까만 별」 전문
이 작품에 곁들인 그림에는 검은 종이에 흰색 펜으로 그린 초록별 상의에 마스크를 한 여인이 그려져 있다. <시인의 말>에서 언급한 대로 비교적 이번 시리즈의 초기작에 해당되는 케리커쳐이다. 눈동자만 빠끔히 내놓은 채 큰 마스크로 복면처럼 감싸고 ‘코로나19’로 차단된 세상을 풍자한 포스터 같지만, 제목은 「까만 별」이다.
하지만 ‘까만 별’이라는 생뚱맞은 제목도 제목이거니와 초장부터 “지난 가을밤엔/ 초록별도 많이 쏟아져”로 시작하여 종장의 “몇 광년 가야할 초록별”까지의 무한대의 시간과 공간을 통할하는 우주 질서에 접근하고 있다. ‘초록별’, ‘별’, ‘초록별’, ‘까만 별’ 등 단시조 한 편에 등장하는 별의 이미지는 각각 다르면서도 “마스크 속 까만 별”로 종결되는 현상적 순간과 그 한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반도라는 지엽적인 한계, 21세기라는 시간대와 코로나라는 불가역적 재앙, 생명의 유한성까지가 짧은 단시조의 행간에 암호 같은 추상적 메시지를 상감해 둔 시편이다.
-민병도 시인 작품해설 중에서
녹원 이상범 시인의 상상 세계
나는 문학평론가이기에 캐리커처에 대해 논평할 자격이 없다. 다만 캐리커처와 관련된 그의 시조에 대해 간단한 감상의 글을 쓰고자 한다. 그림과 문학이 접합하는 독특한 국면에 관심을 두고 시인의 상상력 작동의 특징과 그것의 결과적 성과에 대해 간략히 서술하려 한다. 그의 시조가 캐리커처를 통해 창출된 것이지만 그림은 참조만 하고 시조의 문학적 성과를 주로 검토할 것이다. 독자들도 이 시집을 읽으며 그림을 감상하면서 작품을 읽을 텐데, 그림과 작품의 상호 관계도 흥미가 있겠지만, 그림은 고정되어 있고 시조는 언어를 통해 연상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시인이 펼쳐내는 상상 세계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러니 독자의 작품 이해를 도와준다는 뜻에서 시인의 상상 세계를 친절하게 설명하려 한다.
기다리는 시간은
영 오지 않았다
풀 향기 같은 가을
향내 맡고 살고 싶다
풀벌레 짧은 삶이어도
더디 사는 법 일러준다.
「더디 사는 법」 전문
누군가를 기다리는 찻집의 여성을 보고 그린 캐리커처에 부친 작품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희망과 좌절의 시간이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희망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으면 그 시간은 좌절의 시간이다. 그러니 기다림 속에는 희망과 좌절,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기다리는 시간은 / 영 오지 않았다”라는 말은 시간이 오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기다리는 대상이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기다림의 대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기다리는 시간 자체가 증발했다고 본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오지 않는다면 희망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때는 가을이라 향기로운 풀 냄새가 풍겨 온다. 부재의 허전함을 메우는 풀 향기가 있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오지 않아도, 그 시간이 영원히 사라져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풀잎 사이에서 풀 향기가 피어난다. 향기에 섞여 풀벌레 울음소리도 들린다. 소리는 멈추지 않지만, 풀벌레의 삶은 길지 않을 것이다. 풀이 시들면 풀벌레도 사라질 텐데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이렇게 풀 향기를 맡으며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면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듯하다. 심지어는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도 일으킬지 모른다. 만일 시간이 정지된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오지 않는 일도 없고 풀벌레가 사라지는 법도 없다. 우리는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을 살 것이다. 이상범 시인은 이렇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의 초상을 통해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시간을 상상해 보았다.
숨소리만 들리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세상을 꿀꺽 삼킨 채
삶을 생각하게 했다
태백엔 부라리는 독수리
응시하는 동해 저쪽.
「고요 생각」 전문
이번에도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꼼짝하지 않고 핸드폰만 응시하는 한 여인의 모습을 그렸다. 작품에는 핸드폰을 응시한다는 말은 없지만, 여인의 초상을 보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핸드폰이 있으니 지루함 없이 몇 시간이라도 앞을 응시할 수 있을 것이다. 미동도 하지 않고 앞을 보고 있으니,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세상을 꿀꺽 삼켜 안으로 집어넣은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여인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핸드폰을 바라보는 여인에게 있는가, 여인이 응시하고 있는 그 핸드폰 속에 있는가. “모든 것이 이 손안에 있소이다”라고 외친 한명회처럼 그 여인도 핸드폰 속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알아차리는지 모른다.
그 여인을 바라보는 이상범 시인도 숨을 죽이고 관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관조하면서 그 여인의 삶은 무엇인지, 자신의 삶은 또 어디에 있는지를 묵상했을 것이다. 그런 명상 끝에 시인은 태백산 봉우리를 날아다니는 한 마리 독수리를 떠올렸다. 독수리가 큰 눈으로 응시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그 여인의 눈도 독수리처럼 커서 숨을 멈추고 핸드폰 깊은 곳을 뚫어져라, 보는데 마치 독수리가 태백 높이 떠서 동해 푸른 바다를 응시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고요한 정지의 자태로 전면을 몰두하는 그 여인은 태백에 떠서 동해를 관망하는 장엄한 형상이 된다. 고독한 관찰자가 아니라 큰 포부를 지닌 견자(見者)가 되어 동해의 심부를 노려보는 것이다. 참으로 호쾌하고 독특한 상상이다.
-이숭원 문학평론가 작품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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