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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감상하는 좋은 시, 도종환 시인의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by 해들임 2025. 5. 12.

이 시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살아 있는 자의 슬픔과 다짐이 한데 어우러진 깊은 울림을 담고 있다. '칠석날'이라는 상징적 시공간을 통해 죽은 이를 기리는 마음과 그리움의 정서를 절묘하게 포착하며, 견우와 직녀처럼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하늘과 땅의 거리’를 시적으로 환기시킨다. 이는 단순한 비극적 이별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사랑의 형이상학적 연결을 상상하게 하며 독자에게 강한 정서적 공명을 일으킨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라는 대목은 생전의 후회와 죽음 이후의 안타까운 헌신이 겹쳐져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삶의 궁핍 속에서도 지켜낸 정성과 사랑은 덧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은 그것을 영원한 재회로 이어지는 길로 승화시킨다. 특히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께 나눠주고 /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라는 구절은, 죽은 자의 삶이 이웃과 자연 속에 묻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며, 사랑과 나눔의 정신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음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이 시는 죽음을 종결이 아닌 '다시 만남의 길'로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통해, 살아 있는 자의 일상 노동과 애도의 의례가 어떻게 영적 연결로 이어지는지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라는 마지막 구절은, 고된 삶의 지속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사랑을 다시 만나는 여정임을 깨닫는 순간을 보여준다. 고통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행위가 곧 사랑을 기억하는 의식이라는 점에서, 이 시는 농민적 삶의 고단함 속에 깃든 철학적 통찰을 시적으로 전한다.

 

결국 이 시는 죽은 이를 향한 애도와 그리움, 그리고 살아 있는 자의 삶의 무게를 절묘하게 연결시키며, 인간 존재의 본질적 고독과 사랑의 의미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죽음과 재회의 이미지를 자연과 민속적 상징을 통해 풀어내며, 한국적 정서와 우주의 순환적 감각을 동시에 담아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노래 감상하기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시_도종환

노래_해드림출판사

 

 

견우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께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