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도시 변두리의 어두운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그 속에 존재하는 따뜻한 인간애와 구원의 희망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영등포역 골목에 비가 내린다’는 첫 구절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정처 없이 흘러가는 인생의 쓸쓸한 정서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비는 씻김이자 위로이며, 동시에 그 속을 살아가는 이들의 눈물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시인은 노란 우산과 늙은 창녀, 요셉병원 앞에 모인 남루한 사내들을 통해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을 응시합니다. 이 인물들은 비에 젖고, 인생에 젖어 있는 존재들로, 도시의 어둠 속에서 버려지고 잊혀진 자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대변합니다.
그런데 이 시는 단순히 절망과 비애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제 더 이상 술을 마시고 병든 쓰레기통은 뒤지지 말아야 한다”는 대목에서 드러나듯, 시인은 무력한 절망을 넘어서려는 조용한 저항과 다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오늘 밤에는 나와 함께 가정식 백반을 들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도시의 골목에서, 가장 외로운 이에게 건네는 이 한 끼의 따뜻한 제안은 단순한 식사의 의미를 넘어, 공존과 연대, 함께 살아가자는 인간적 외침으로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이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꽃 한 송이가 칼보다 더 아프다’는 구절처럼, 사랑과 연민이 오히려 인간의 가슴을 더 깊이 찌른다는 역설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은 삶의 가장 아픈 순간에 피어나는 인간 감정의 본질을 꿰뚫습니다. 또한 “도대체 예수는 어디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가”라는 절규는 종교적 상징을 통해 구원의 지연, 혹은 부재를 드러내며, 인간 존재가 겪는 구속 없는 기다림의 고통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마지막 구절에서 “영등포에는 왜 기차만 떠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가”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현상의 관찰이 아니라, 떠남과 돌아옴, 즉 희망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끈질긴 의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읽힙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도시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피어나는 작은 온기와 함께 살아가자는 제안을 통해, 인간이 여전히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노래합니다. 절망 속에서 건져 올린 사랑과 연민의 언어는 독자의 마음을 울리며, 시가 지녀야 할 본질적인 힘—공감과 위로—을 깊이 새기게 합니다.
노래로 듣기
영등포가 있는 골목
-시: 정호승
-노래 제작: 해드림출판사
영등포역 골목에 비가 내린다
노란 우산을 쓰고
잠시 쉬었다 가라고 옷자락을 붙드는
늙은 창녀의 등 뒤에도 비가 내린다
행려병자를 위한 요셉병원 앞에는
끝끝내 인생을 술에 바친 사내들이 모여
또 술을 마시고
비 온 뒤 기어나 온 달팽이들처럼
언제 밟혀 죽을지도 모르고 이리저리 기어다닌다
영등포여
이제 더 이상 술을 마시고
병든 쓰레기통은 뒤지지 말아야 한다
검은 쓰레기 봉지 속으로 기어들어가
홀로 웅크리고 울지 말아야 한다
오늘 밤에는
저 백열등 불빛이 다정한 식당 한구석에서
나와 함께 가정식 백반을 들지 않겠느냐
혼자 있을수록 혼자 되는 것보다
혼자 있을수록 함께 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마음에 꽂힌 칼 한 자루보다
마음에 꽂힌 꽃 한 송이가 더 아파서
잠이 오지 않는다
도대체 예수는 어디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가
영등포에는 왜 기차만 떠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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