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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

여류 수필가들의 섬세한 표현력 3

by 해들임 2024. 10. 6.

미국 남동부 애팰래치아 산맥의 오두막에서 농경과 수렵 생활을 했던 체로키족은 비밀의 장소를 하나씩 가슴에다 품고 살았다. 은밀히 간수한 그 공간은 영혼의 마음을 닦기 위한 그네들 인디언의 비법이며 숭고한 전통이었다.

우주와 접선이 된 깊은 산속의 자기 나무 그늘 밑에서 체로키 인디언들은 바람이 잎새를 건드리며 슬쩍 떨구고 지나가는 신탁을 엿듣곤 했다. 문득 나도 나만의 숲을 만들고 싶다. 산책길에 은연히 신호를 보낼 잎이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를. 그 신성한 등걸에 기대어 이따금은 졸고 싶다.

숲과 나무들, 별이 총총 빛나는 밤하늘,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의 비밀과 강물이 흘러가며 속닥이는 밀어, 그리고 새파랗게 열린 창공은 평생을 두고 그리도 연모하고 눈물겨웠던 나의 노래요, 울음이며 가없는 그리움이었다.

이제는 집이라는 공간을 적당히 어질러놓고도 편히 살아간다. 주방 도구들이 싱크대에 종일 나와 있고 일간신문은 저녁이 될 때까지 거실 바닥에서 뒹굴어도 예전처럼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식탁은 책들로 점령당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티끌만 한 먼지 한 톨에도 치를 떨었던 소싯적의 까탈스러움. 그날의 결벽증에 비한다면 지금 나의 이상은 지구처럼 둥글, 둥글어진 것이지. 웬만한 소요쯤은 눈도 끔쩍 않으니 이만하면 꽤 달관한 터. 그 지점을 지금 내가 막 통과하고 있다.

 

-안윤자 수필집 [사대문 밖 마을], ‘나무들의 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