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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

여류 수필가들의 섬세한 표현력 4

by 해들임 2024. 10. 6.

고귀한 영혼과의 만남을 좋아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싫어하고 힘이 약한 쪽에 내 무게를 실어보려는 성향이 있다. 내향성의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진이 빠지고, 소음 속에 포위되면 기가 빨려 급속도로 방전되는 취약한 존재다.

내 감각은 미세한 변화도 증폭시키는 ‘능력’이 있어 예민하고 쉽게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오늘도 여린 살갗으로 세상을 더듬어 나가면서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배워가는 중이다. 나이 쉰이 넘었으나 아직도 아이들이 혀끝으로 세상을 인지해나가듯 여린 더듬이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긴 세월, 나는 제한된 작은 공간에서 맴돌기만 했다. 예민한 더듬이조차도 더는 새로운 감각을 느끼지 못하면서 차츰 삶의 희열과 활력을 잃어갔다. 자가 호흡을 하지 못하는 연명 중의 환자처럼…. 그런데 지난달 나는 어항으로부터 바다로 방류되었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면 죽을 줄 알았는데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한 번 시작하는 삶, 이제 돛을 올리고 있다.

 

-자희 수필집 [경계 저 너머]  '멜랑꼴리 내 코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