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120 여류 수필가들의 섬세한 표현력 6 …길을 가는데 가로수 잎 하나가 내 앞으로 떨어졌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철을 열심히 산 흔적이 보인다. 거친 바람과 천둥에도 잘 견뎠다는 칭찬 한마디 듣고 싶은지 나를 올려다본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철 살다가 떠나는 나뭇잎의 고통을 들여다본다. 여름 숲이 바람에 흔들리며 힘이 넘치는 청년 같다면 가을 숲은 세상이 헛됨을 알게 해준다.13세기 페르시아 신비주의 시인 루미는 ‘인간이란 존재는 여관과 같다고 했다. 매일 아침 새 손님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모든 만물은 시작과 끝도 없이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 시간은 같은 굴레를 돌고 있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많은 생명을 변화시킨다.사람의 마음은 리비도와 티나토스가 움직인다. 리비도는 즐거움, 쾌락, 만족, 생존을 추구하는 긍정의 에너지고, 티나토스는 .. 2024. 10. 7. 여류 수필가들의 섬세한 표현력 5 …나는 한(恨)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어떤 애틋함이 한일까? 어떤 슬픔이 한일까 하고 진정 가슴으로 느껴보지 못한 우리말의 어휘가 한(恨)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한이라는 어휘가 비로소 절절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한은 가없는 그리움이었다.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곁에 계시면, 살아 계신다면 어머니의 다정한 벗이 되어 모녀간의 정을 살갑게 나눌 수 있을 텐데…… 여인의 생애를 가슴 깊이 공감하며 분꽃처럼 화사했던 어머니의 미소를 싱그럽게 가꾸어드렸을 텐데,칠석날 저녁, 밤하늘을 바라보려 공원에 나갔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마음 깊이 간직해두었던 그리움의 실타래를 꺼내어 은하수의 여울, 그 커다란 수틀에 한 땀 한 땀 오작(烏鵲)의 징검다리를.. 2024. 10. 7. 여류 수필가들의 섬세한 표현력 4 …고귀한 영혼과의 만남을 좋아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싫어하고 힘이 약한 쪽에 내 무게를 실어보려는 성향이 있다. 내향성의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진이 빠지고, 소음 속에 포위되면 기가 빨려 급속도로 방전되는 취약한 존재다.내 감각은 미세한 변화도 증폭시키는 ‘능력’이 있어 예민하고 쉽게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오늘도 여린 살갗으로 세상을 더듬어 나가면서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배워가는 중이다. 나이 쉰이 넘었으나 아직도 아이들이 혀끝으로 세상을 인지해나가듯 여린 더듬이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긴 세월, 나는 제한된 작은 공간에서 맴돌기만 했다. 예민한 더듬이조차도 더는 새로운 감각을 느끼지 못하면서 차츰 삶의 희열과 활력을 잃어갔다. 자가 호흡을 하지 못하는 연.. 2024. 10. 6. 여류 수필가들의 섬세한 표현력 3 …미국 남동부 애팰래치아 산맥의 오두막에서 농경과 수렵 생활을 했던 체로키족은 비밀의 장소를 하나씩 가슴에다 품고 살았다. 은밀히 간수한 그 공간은 영혼의 마음을 닦기 위한 그네들 인디언의 비법이며 숭고한 전통이었다.우주와 접선이 된 깊은 산속의 자기 나무 그늘 밑에서 체로키 인디언들은 바람이 잎새를 건드리며 슬쩍 떨구고 지나가는 신탁을 엿듣곤 했다. 문득 나도 나만의 숲을 만들고 싶다. 산책길에 은연히 신호를 보낼 잎이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를. 그 신성한 등걸에 기대어 이따금은 졸고 싶다.숲과 나무들, 별이 총총 빛나는 밤하늘,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의 비밀과 강물이 흘러가며 속닥이는 밀어, 그리고 새파랗게 열린 창공은 평생을 두고 그리도 연모하고 눈물겨웠던 나의 노래요, 울음이며 가없는 그리움이었.. 2024. 10. 6. 여류 수필가들의 섬세한 표현력 2 …그날 밤 남편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을 입증해 보이려는 듯 잠자리를 요구해왔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찌 화평의 한마디 말도 없이 나를 거저 취하겠단 것인가. 화성 남자, 금성 여자라는 말도 있듯 이 문제에 관한 한 남성과 여성은 피차 외계인일 수밖에 없는가 보다. 이런 경우 대다수 여성은 형이상학적 존재로 머무는데 남성들은 형이하학적 수컷으로만 변질되는 것 같다. 여성들은 감성과 정신이 우선이고 몸은 후발격인 반면, 대다수 남성은 자발없이 몸이 먼저 성급을 떠는 것 같으니 말이다.그날 밤, 나는 남편의 저돌성에 갈등했으나 그 엉터리 같은 명제를 수용하기로 했다. 헤어질 게 아니라면 협상을 할 수밖에. 한데 바로 그날 나는 오랫동안 갸웃거리며 풀지 못했던 난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2024. 10. 5. 여류 수필가들의 섬세한 표현력 1 …점심을 먹는 식당 안이 술렁거렸다. 새벽녘, 인근의 호수 위로 사체가 떠 올랐다는 것이다. 대학원까지 마친 한국 남자가 생을 마감한 곳에서 나는 뜨거운 국물에 밥을 먹었다. 고향의 연못 위에 뜬 부레옥잠을 생각하며 모래알처럼 깔끄러운 밥알을 씹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동구 밖에서 먼 친척의 부음을 듣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에는 ‘빅베어’ 숲속으로 고사리를 뜯으러 간 할머니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뉴스가 있었다. 살진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숲속을 고향 뒷산쯤으로 착각하신 모양이다.수색대가 며칠을 뒤져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환타지 영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법의 숲처럼 느껴졌다.나는 달팽이처럼 촉수를 세우고 이곳의 지리와 냄새에 익숙해지기 위해 시가지를 돌아보았다. 울창.. 2024. 10. 5. 세 문단 짧은 수필 쓰기, 한잎 수필…휴먼 다큐 방송 촬영 첫날 아침 일찍 동생 부부가 서울로 떠났다. 어머니와 나는 연휴 동안 어지럽혀진 집 안을 정리하느라 아침부터 구슬땀을 흘렸다. 집 안의 어수선한 기운을 쓸어내듯 방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거추장스러운 물건들을 치웠다. 어머니가 부엌이며 쓰레기들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마당 가 지하수 수도를 틀어 토방을 깨끗이 씻어냈다. 두 손을 쉴 틈 없이 놀리면서도, 머릿속엔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방송국 휴먼 다큐 촬영이 어지럽게 떠돌았다. 어제저녁 메인 작가가 오늘 오후 2시까지 도착하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오늘은 아마 앞으로 일주일 동안 촬영할 레이아웃을 잡을 듯하다.나는 사실 동적인 미학보다는 정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편이다. 반면 방송은 아무래도 동적인 미학을 앞세우는 듯하다. 애초 나는, 60대 중반 아들이 92.. 2024. 9. 19. 세 문단 짧은 수필 쓰기, 한잎 수필…무제 살갗을 태울 듯 쨍쨍 내리쬐는 햇볕이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흘레바람이라도 불었으면 좋으련만, 바람은 감질나게 속삭일 뿐이다. 올여름 줄기차게 내리쬐는 햇볕은 자주 습기가 들어찬 나의 내면을 뽀송뽀송하게 하였다. 추위와 햇볕의 부재로 우울한 날이 잦은 겨울이 되면 올여름의 이 햇볕이 그리울 것이다.땡볕이 한풀 꺾인 밤이면 풀벌레 소리가 어두운 허공을 굴러다닌다. 손을 휘저으면 잡힐 듯한 소리들이다. 고향 마을 앞 개펄 바다의 윤슬이 소리를 낸다면 이들 풀벌레 소리와 같을지 모른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 방울을 흔들며 버선발로 허공을 뛰어오르던 도봉산 어느 처녀 무속인이 떠오르기도 한다.추석 연휴가 깔딱고개를 넘고 있다. 동생 부부가 상경하는 내일이면 다시 어머니와 나만 남게 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 2024. 9. 19. 세 문단 짧은 수필 쓰기, 한잎 수필…승용차가 없는 이유 명절이 되면 끈히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이 두 사람을 잊은 채 명절을 지내본 적은 없다. 여느 때보다 두드러지는 두 사람의 빈자리는 항상 푹 꺼진 듯한 명절을 우리에게 안긴다. 동생 부부가 못 올 때는 늙은 어머니와 내가 적요한 명절을 맞는다. 다행히 올 추석에는 동생 부부가 내려왔다. 젊은 오랜 기간 매달렸던 사법시험 공부는, 직장을 갖거나 가정을 꾸릴 기회조차 앗아갔다.나는 승용차가 없다.어디를 가든 대중교통 이용이 익숙하지만, 승용차가 없으니 선뜻 나서지 못하는 아쉬움이 더러 있다. 시골집에서 생활할 때 어머니를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며 함께 여행할 시간을 마련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제일 크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보성군 율포 녹차해수탕도 동생이 아니면 동행하지 못한다. 승용차가 있으면 수시로 다녀.. 2024. 9. 19. 세 문단 짧은 수필 쓰기, 한잎 수필…극단적 생각 다시 어머니가 있는 시골로 내려왔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번에는 서울에서 머물렀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다시 맞이하는 시골 정취가 신선한 기운을 더한다. 새벽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신비감을 쏟아내면서, 동쪽 하늘과 북쪽 하늘을 숱하게 채운 채 새벽 5시까지 떠날 줄을 몰랐다. 무수한 별들의 속삭임이 풀벌레 소리로 들리는 게 아닌가 싶다. 밤새 어둠을 울리는 풀벌레 소리를 떠날 수가 없어 잔디 깔린 마당을 한참 서성거린다. 서울 일터에서 우후죽순 솟았던 마음의 상처들을 씻어내는 시간이다.어김없이 수탉들이 여명을 불러들인다. 마을 여기저기서 수탉들의 울음이 허공으로 솟았다가 긴 꼬리가 달린 유성처럼 떨어진다. 별들이 서둘러 떠나고 풀벌레 소리도 잦아든다. 새들이 깨어나면 서정의 시골 아침이 시작된다. 새벽부.. 2024. 9. 15. 세 문단 짧은 수필 쓰기, 한잎 수필 4 자존심은 인간 존재의 중심에서 나오는 강한 원동력, 인간 존재의 중심을 관통하는 깊고 묵직한 힘입니다. 자만이나 고집처럼 타인과 비교에서 비롯된 허접한 감정과는 달리, 자존심은 자신에게 깊은 존중과 가치를 부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종종 이 자존심을 통해 인생의 난관을 이겨내고, 때로는 무너질 뻔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자존심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를 애써 들으며 자신을 지탱해가는 힘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고유한 존재로서 존엄을 지키기 위한 무언의 선언이며, 삶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내적 자산입니다.삶은 때때로 가혹하고 불공평하며, 재정적 어려움은 자존심을 가장 먼저 시험하는 무기입니다. 하지만 자존심을 지키려는 이에게는 강인한 정신이 필요합니다. 매.. 2024. 9. 13. 문학적 장치를 한 수필 쓰기…낯설게 하기 예시 11 수필이 단순한 생각의 나열로 끝나지 않고 문학적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여러 장치들이 필요하다. 주제의 깊이는 삶의 본질을 꿰뚫어야 하고, 보편성은 독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낯설게하기 기법을 통해 익숙한 것조차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서정적인 표현은 글에 따뜻한 감성을 더한다. 독창성은 글을 특별하게 만들고, 구조적 완성도는 내용의 흐름을 탄탄하게 유지시킨다. 문체와 어휘의 세련미는 수필의 격을 높이며, 무엇보다 진정성은 독자와의 신뢰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다. 이러한 문학적 장치들이 어우러질 때, 수필은 단순한 글을 넘어서는 예술이 된다. 낯설게 하기는 일상적이고 익숙한 사물이나 현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문학적 기법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너무 자주 마주.. 2024. 9. 12. 이전 1 ··· 4 5 6 7 8 9 10 다음